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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이 말하는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럽고 훌륭한 순간
노인들에게 내 인생에서 가장 내 자신이 자랑스럽고 훌륭했던 순간을 꼽으라 하면 그들은 처절한 실패에서 겨우 무릎을 움켜쥐고 일어났을 때를 꼽았다. 한참 잘나갈 때, 가장 넓은 집에 살았을 때, 사업이 잘 됐을 때, 돈을 잘 벌었을 때가 아니고. 모든 것을 잃고 완전히 꼬꾸라져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던 때, 거기에서 다시 일어나던 그 순간을 꼽았다. 이를테면 이런 거였다. - 남편이 사업을 말아먹었는데 그냥 말아먹은 게 아니고 집까지 잡혀먹고 길바닥에 나 앉게 생겼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며칠동안 무슨 정신을 지냈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은 어리고, 남편은 혼이 나가버렸는데 나까지 주저앉으면 내 새끼들 모두 굶기겠다 싶어 혼자 버스를 타고 하염없이 울었다. 종로를 지나가는데 포장마차의 카바이트불빛이 반짝였다. ..
2025. 3. 21. 06: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