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 / 2026. 2. 13. 20:45

흰쌀밥과 제국의 몰락

《흰쌀밥과 제국의 몰락》

1866년 7월 20일, 오사카성에서 제14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모치가 숨을 거두었다. 향년 20세였다. 그는 제2차 조슈 정벌을 지휘하기 위해 오사카에 머물고 있었다.

그는 전장에 나가기도 전에 몸이 먼저 무너졌다. 몸에 힘이 빠지고 숨이 찼다. 가슴이 답답해졌고 심장은 거칠게 뛰었다. 의원들이 달려들었지만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역병도 아니었다. 서서히, 설명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쓰러졌다.

그 이전의 쇼군들 가운데도 비슷한 증상을 보이며 요절한 인물이 적지 않았다. 일본에서 가장 잘 먹고, 가장 좋은 환경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왜 이렇게 허약했는가.

답은 밥상이었다.

17세기 초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 막부를 열고 장기 평화가 시작되자 일본의 농업 생산은 크게 늘었다. 특히 쌀 생산이 증가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점점 더 하얀 쌀을 원하기 시작했다.

도정 기술이 발달하면서 쌀겨를 완전히 제거한 순백의 쌀이 유행했다. 부드럽고 맛이 좋았으며 값이 비쌌다. 흰쌀밥은 곧 신분과 부의 상징이 되었다.

에도에 올라온 무사들 사이에서 이상한 병이 돌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걷기 어려워지는 증상이 나타났다. 그런데 고향으로 돌아가 잡곡과 현미를 먹으면 증상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이 병을 ‘에도 앓이’라고 불렀다. 물 탓, 공기 탓, 도시 생활 탓이라는 추측이 나왔지만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오늘 우리는 그 병의 이름을 안다. 각기병이다. 원인은 비타민 B1, 즉 티아민 결핍이다. 이 영양소는 탄수화물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데 필수적이다. 부족하면 신경과 심장이 먼저 손상된다. 손발 저림, 근력 저하, 심장 비대, 심부전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티아민이 쌀겨에 들어 있다는 점이다. 쌀을 하얗게 만들수록 생명을 지키는 성분은 깎여 나갔다.

가장 귀한 밥상이 가장 위험한 밥상이었던 셈

비타민이라는 개념이 확립된 것은 20세기 초다. 네덜란드의 크리스티안 에이크만이 연구를 통해 식단과 각기병의 연관성을 밝혔고, 이후 티아민이 원인 물질로 규명되었다. 그러나 그 전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이유도 모른 채 쓰러졌다.

비극은 메이지 시대에도 반복되었다. 해군 군의관 다카키 가네히로는 각기병이 식단 문제라고 보고 보리와 서양식 식사를 도입했다. 해군에서 각기병은 급감했다.

반면 육군 군의총감 모리 오가이는 세균설을 고수했다.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육군에서 약 25만 명이 각기병에 걸렸고, 2만 7천 명 이상이 사망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전투 사망자에 필적하는 숫자였다.

에도 시대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에도에 오면 병이 나고 시골에 가면 낫는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다만 흰쌀이 원인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가장 좋은 것, 가장 귀한 것이 해로울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가 검토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메이지 시대의 육군 역시 무지해서가 아니라 확신 때문에 실패했다. 독일에서 배운 세균론이 절대적이라고 믿었다. 자기 이론과 맞지 않는 증거는 증거로 취급하지 않았다.

똑똑한 사람의 고집이 집단적 피해를 키웠다.

각기병은 이제 과거의 병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교훈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모두가 좋다고 믿는 것, 가장 선진적이라고 여겨지는 이론, 가장 고급이라고 평가되는 제도가 과연 안전한가? 경험적 패턴이 반복되는데도 기존 신념 때문에 외면하고 있는 것은 없는가?

역사는 대개 전쟁과 혁명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한 그릇의 밥이 국가의 체력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 문제는 음식이 아니라 인식이다. 의심하지 않는 태도, 확신에 대한 집착, 권위에 대한 맹신이 때로는 총과 포보다 큰 피해를 남긴다.

오사카성에서 숨을 거둔 스무 살의 쇼군은 자신의 병명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지금도 경고로 남아 있다. 가장 좋은 것처럼 보이는 것부터 의심하라는, 불편하지만 필요한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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