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 / 2026. 2. 14. 17:58

미국 우유 저온 살균 처리의 역사

우유가 영유아 사망의 주범이 되기도
지금은 우유가 안전하고 영양이 풍부한 식품이지만, 미국에서 산업화가 시작된 단계에서는 유아 사망의 주범이기도 했다. 1850년대 뉴욕에서 이상한 전염병이 돌았다. 매년 8천 명의 아기가 뉴욕과 뉴욕 인근 도시에서 죽고 말았다. 아기들은 어떤 약으로도 막을 수 없는 설사 증상을 앓다가 죽는 의사도 파악할 수 없는 원인 미상의 병이었다.
그런데 신문사의 저널리스트 프랭크 레슬리가 아이가 아프거나 사망한 집을 다니며 조사를 한 결과 공통점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된다. 사망한 모든 아이가 모유 대신 뉴욕 인근에서 생산된 우유를 먹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농장 주인들이 사료값을 아끼기 위해 술을 만들고 버리는 걸쭉한 술지게미(주박, stillage)를 먹인 젖소였다.
19세기 중반에는 산업혁명이 일어나 일손이 부족한 시기, 하층민 여성들은 출산한 직후에도 밖에 나와 일을 했다. 아가들은 모유 대신 분유를 먹었고 중산층 여성들은 몸매가 망가진다는 이유로 모유 대신 우유를 먹였다. 그래서 도시는 우유가 필요했지만, 농장 지역은 뉴욕에서 떨어진 곳이라 우유를 생산해도 긴 시간 철도를 통해 도시로 운송하다 보면 부패해버리곤 했다. 당시에는 살균 기술도 냉장 시설도 없었다.
도시 근처에는 소를 위한 목초지를 만들 공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서 아이디어를 냈다. 술 공장 외벽에 헛간을 짓고 어차피 버려질 술지게미로 소를 키우겠다는 발상이었다. 술지게미는 단백질과 섬유질이 풍부한 고영양 부산물일 수 있지만 보기에 따라 썩혀 버리는 쓰레기를 먹이는 소로 보이고 이것만 먹이면 건강할 수 없다. 알코올 성분이 든 술지게미를 먹은 소는 풀을 먹였을 때보다 5배 이상 더 많은 우유를 생산했지만, 소들의 건강 상태는 점점 말이 아니게 변했다. 소들의 장기는 궤양으로 뒤덮였고 아픈 소는 파란색을 띠는 이상한 우유를 생산했다. 이렇게 불량한 우유를 생산업자는 우유를 하얗게 보이기 위해 밀가루, 달걀, 심지어 석고까지 넣어 색과 농도를 우유로 위장했다.
그러다 1880~90년대에 들어와 냉장 시설이 완비된 기차가 등장하자 시골의 낙농가에서 생산된 신선한 우유가 도시민들에게 배달되기 시작했다. 도시민도 제대로 된 우유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배달된 우유는 특히 엄마들에게 환영받았다. 당시 직장에 다니는 엄마들은 2~3시간 간격으로 모유 수유를 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모유를 병에 모아두었다 아기에게 먹이곤 했다. 농장에서 배달된 우유의 소비가 늘자, 우유의 안전성에 대한 의심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 출발은 장티푸스에 대한 공포였다. 1880~90년대에 걸쳐 미국 전역에서 기승을 부린 장티푸스의 원인은 오염된 식수에 있는 장티푸스균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그러다 1889년 한 과학자는 “매일 아침 배달되는 우유에는 세균이라는 수백만 마리의 살아 있는 해충도 함께 들어 있다”라고 경고했다. 여름철만 되면 영유아들의 설사로 고통을 받았는데 우유가 의심의 대상이 된 것이다.
현미경이 등장하면서 장티푸스균이 물보다 우유에서 더 잘 번식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1903년 <뉴욕타임스>는 “젖소에서 갓 짜내 우유 1리터에는 1,200만 마리 이상의 바실러스균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다 24시간이 지나면 이 수치는 6억 마리로 급증한다.”라고 보도했다. 그리고 한 과학자는 “모든 식품 중에서도 우유가 결핵과 장티푸스균이 번식하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경고했다. 우유에 결핵 등 질병을 유발하는 수많은 유해 미생물도 서식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고, 디프테리아와 성홍열을 유발하는 세균까지 추가되자 <뉴욕타임스>는 ‘우유는 가장 귀하면서도 가장 위험한 식품’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런 세균 문제는 ‘저온 살균 처리’를 통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1870년대에 이미 파스퇴르가 우유를 60~80°C까지 가열하여 20분 동안 유지한 후 냉각하면 우유의 맛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우유에 서식하는 미생물을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유의 저온 살균을 의무화하자’라는 요구가 격렬한 반대에 부딪힌 것이다. 미국 식품 안전을 담당한 화학국장 하비 와일리를 비롯한 공중 보건 관료들은 “우유를 살균 처리하면 영양소가 파괴된다.”라는 이유로 살균 처리를 반대한 것이다. “우유를 살균 처리하면 가격이 올라가 빈곤층이 우유를 먹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의사들도 찬반 두 진영으로 갈라졌다.
결정을 미루는 사이 우유에 대한 고발은 끝없이 터져 나왔다. 1909년에는 뉴욕시에서 사망한 1만 6,000명의 1세 미만 영아 4,000명이 ‘상한 우유’ 때문에 죽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우유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면서 1909년부터 1916년까지 미국의 우유 소비량은 약 20% 하락했다. 당시 우유의 50~60%가 농촌 지역에서 버터, 치즈, 크림 등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는 것을 고려하면 마시는 우유 소비량은 절반으로 급감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다 효과적으로 살균 처리가 가능한 설비도 개발되고, 저온 살균 의무화가 힘을 얻게 되었고, 우유 소비량도 서서히 상승세로 돌아섰다. 1920년대에 들어와서는 도시에 공급되는 대부분 우유가 저온 살균 처리되었고, 우유 소비량도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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