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하면 독이 되는 인간>
‘가충’은 삼국지 후반부에 등장하는 권신이다. 원래 위나라의 원로 가규의 아들이었지만 사마씨가 득세하자 재빨리 줄을 갈아탔다. 이후 ‘사마소’의 총애를 받아 승승장구하게 된다.
그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계기가 된 것은 황제 시해 사건이다. 당시 황제는 ‘조모’였지만 사마소에게 권력을 빼앗겨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분노를 참지 못한 조모는 측근들을 이끌고 사마소를 죽이려 했다. 무리는 적었지만 그래도 황제인지라 다들 어쩌지 못했다. 심지어 사마소의 동생인 사마주가 군대를 이끌고 왔지만 황제의 꾸중을 듣고 물러섰을 정도다.
이때 엑셀을 밟은 게 가충이다. 가충은 망설이는 병사들에게 빨리 손을 쓰라고 닦달했다. 결국 황제가 대낮에 길거리에서 암살당하는 대참사가 벌어졌다. 하지만 가충은 표정을 싹 바꾸고 모든 죄를 분대장이었던 ‘성제’에게 떠넘겼다. 성제는 지시를 따랐을 뿐이라며 반발했지만 역적으로 몰려 죽었고, 그 일가친척도 몰살당했다.
정당성이 부족한 권력은 조폭과 다를 게 없다. 구린 구석이 많았던 사마소는 말 잘 듣는 예리한 칼이 필요했다. 가충을 끼고 있으면 수가 틀리면 황제도 가만두지 않는다는 압박과, 말을 잘 들으면 챙겨주겠다는 신호를 동시에 줄 수 있었다. 덕분에 가충은 처벌을 받기는커녕 사마씨와 운명공동체가 되어 권력의 중추를 차지했다. 꼬리 자르기당한 ‘성제’만 불쌍한 신세가 됐다.
사마씨와 ‘원죄’를 공유하는 사이가 되자 가충의 권력 사유화는 더욱 노골적이 되었다.
사마소가 아들들 중 후계자를 고민하자 가충은 ‘사마염’을 밀었다. 기록에 ‘사마소는 원래 둘째인 사마유를 염두에 두었으나 가충의 반대로 뜻을 바꾸었다’고 남았을 정도다. 이후의 행보로 보아 사마유는 성향이 유교적 이상에 가까웠다. 황제 시해 사건 당시 적장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사건 재평가를 시도할 수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반면 사마염은 여러모로 기득권에 가까워 예측 가능한 존재였다. 가충은 자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관리하기 쉬운 사마염을 밀었던 것이다.
그는 비상식적인 방법으로 권력을 잡은 열등감 때문에 잠재적 경쟁자가 나타날까 두려워했고 대부분의 열정을 국정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헐뜯고 모함하는 데 쏟았다. 당시 기록에 ‘남을 칭찬하고 비방하는 말이 난무했다’고 되어 있을 정도다. ‘난무’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보아 여기서 칭찬이란 순수한 칭찬이 아니라 자기 라인을 심기 위한 작업을 뜻하는 것 같다.
‘임개’는 가충과 대칭점에 서 있던 인물이다. 그는 유능할 뿐 아니라 바르고 성실해 명성이 높았다. 가충은 그를 미워했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임개를 태자소부에 추천했다. 태자소부는 태자를 보필하는 고위직으로, 겉으로는 영전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황제를 만날 기회가 줄어 점점 중앙에서 소외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결국 가충은 임개를 탄핵하는 데 성공했다.
가충의 패악질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서량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주변에서 그를 진압군의 대장으로 추천했다. 가충은 평생 궁궐에서 남을 비판하고 협잡질만 했지, 스스로 무언가를 해본 적이 없었다. 그는 임무를 모면할 핑계를 찾아 발버둥쳤는데, 찾아낸 해결책은 태자의 장인이 되는 것이었다. 가충은 황실과 다른 고위 관료들에게 뇌물을 먹여 딸 ‘가남풍’을 태자비로 만들었다. 가충을 외지로 보낸다는 계획은 혼인식을 거치면서 흐지부지됐다. 덕분에 가충은 위기를 면했지만, 1년 가까이 대장직이 공석이었던 탓에 진나라는 초동 대처에 실패했고 그 결과 반란을 진압하는 데 거의 10년이 걸렸다. 가충을 대신해 보낼 대장으로 ‘사마준’이 발탁됐는데 동부 전선을 지키던 그를 빼려고 요직에 있던 인물들을 돌려 막느라 전체 시스템이 꼬여버린 건 덤이다.
그리고 대망의 오나라 정벌. 이쯤 되자 사마염도 짜증이 났는지 이번에도 가충이 발을 빼려 하자 ‘그대가 가지 않으면 대신 내가 가겠다’고 압박했다.
하지만 가충은 대도시인 양양에 자리를 깔고 앉은 뒤 원정을 차일피일 미루었다. 싸워서 이길 생각은 하지 않고 현장 지휘관들을 쫓아내기 위한 정치질에 몰두했다. 준비 상태가 엉망이라며 원정을 기획한 ‘장화’를 요참(허리를 자르는 형벌)에 처할 것을 주장하는가 하면 ‘왕준’이 큰 승리를 거두자 단지 운이 좋았던 것이니 이쯤에서 만족하고 그만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무능함이 드러나고 그 대신 현장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커질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뒷배가 든든했던 ‘두예’가 없었다면 가충의 주장대로 오나라 원정은 전면 취소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뻔뻔하게도 오나라가 망했을 때 공신 반열에 서서 본인과 가족 모두 포상을 받았다.
진나라가 세워지는 과정에서 활약한 인물 중 가충보다 유능하고 공이 많은 인물은 널리고 널렸다. 하지만 이들 중 행복한 결말을 맞은 인물은 많지 않으며 그나마 살아남은 이들 중에도 가충만큼 출세한 이는 없다. 이쯤 되면 사필귀정이란 게 과연 존재하는지 의심이 갈 지경이다.
하지만 역사의 시계는 우리의 시계보다 긴 호흡으로 흐른다. 뿌린 대로 거두는 세상의 이치를 가충과 진나라도 피하지 못했다.
사마소는 가충 덕분에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어려운 고비를 넘겼지만 그 대신 평생 갈 족쇄를 얻었다. 가충의 범죄를 방조(사실상 동조)한 순간 둘의 관계는 공범 관계로 전락했다. 사마소는 독한 것으로 유명한 지도자였지만, 가충이 후계자 문제에 끼어들어도 어찌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가충은 1대 황제 사마염(동생 사마유에 비하면 기껏해야 평범한 수준이었고, 말년에는 암군으로 전락했다), 2대 황제 사마충(정신장애가 있었다)을 황제에 앉히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스스로 구린 구석이 있으니 군주에게 절대 복종할 것이라는 기대도 보란 듯이 어긋났다. 사마씨의 총애 외에는 기댈 곳이 없어진 가충은 그 총애를 그 누구와도 나누지 않고 독점하는 데 혈안이 되었다. 원래 건전하지 못한 애정은 끊임없이 연료를 때워 줘야만 유지될 수 있다. 결국 가충은 남의 것을 숨기고, 훔치고, 왜곡하는 데 몰두했다. 스스로의 능력에 비해 자기 자리가 과분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가충이라는 이름의 칼은 계속 찌르고 베어야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고 시간이 갈수록 바깥의 적이 아니라 안을 향하는 일이 늘어났다. 원래 군자는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되 휩쓸리지 않으며 소인배는 사람들과 동조하되(같은 부류인 척하지만) 화합하지 못한다. 가충 같은 사람은 주변에 좋은 사람이 있는 걸 참지 못한다.
약점과 불법 위에 쌓아 올린 관계는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당장 쓸모가 있고 내게 넙죽넙죽 엎드린다고 해서 가충의 손을 들어주면, 언젠가는 그 칼이 내 목을 노리게 된다. 사필귀정, 결국엔 뿌린 대로 거두게 되어 있다.
모르는 이들을 위해 추가: 진나라는 사마충의 시대를 넘기지 못하고 내란(8왕의 난)을 맞아 망했다. 어리석은 황제(사마충)와 포악한 황후(가충의 딸 가남풍), 무능한 장군들(유능한 장군들은 모함을 당해 진작에 제거됐다), 무기력한 관료들이 어렵게 세운 나라를 망쳤다(불법이 당연시되는 기조가 극심했다). 가충의 후손도 멸족을 당했다.
https://www.facebook.com/share/1D32Bz4gcL/
임현상
<가까이 하면 독이 되는 인간> ‘가충’은 삼국지 후반부에 등장하는 권신이다. 원래 위나라의 원로 가규의 아들이었지만 사마씨가 득세하자 재빨리 줄을 갈아탔다. 이후 ‘사마소’의 총애를
www.facebook.com
'스크랩'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결혼비용에는 리미트가 없다는 미혼 파이어족 아재들 (0) | 2026.02.21 |
|---|---|
| 공감되는 홍콩 꼰대의 mz세대 훈계 (0) | 2026.02.20 |
| 매월 점검하면 삶이 놀랍도록 좋아진다는 마법의 체크리스트 35가지 (0) | 2026.02.20 |
| 결혼 안할라 했지만 결혼한 유부남이 느낀 결혼에 대한 고찰 (0) | 2026.02.20 |
| 엔트로픽 아모데이 ceo가 말하는 AI 발전 방향 (1) | 2026.02.15 |
| 존경할만한 남자의 의미 (0) | 2026.02.14 |
| 미국 우유 저온 살균 처리의 역사 (0) | 2026.02.14 |
| 세대간 기술 전승이 끊기고 있다 (0) | 2026.02.14 |
| 흰쌀밥과 제국의 몰락 (0) | 2026.02.13 |
| 만 9년차 섹스리스 부부입니다 (0) | 2026.02.1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