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태 골프장 체포사건의 숨은 그림들
1.
등잔밑이 어둡다고. 김성태 전 회장은 방콕의 한 유명골프장에서 골프를 치고 있었다. 영화처럼 미얀마 접경 매홍손이나 치앙라이의 한 무반(태국식 단독주택)에 숨어 있을거라 생각했다. P골프장은 손님의 대부분이 한국인들이다. 클럽하우스 메뉴에 설렁탕이 있다.
검찰도 등잔밑이 어두웠다. 지난해 5월, 이 사건을 수사하던 수원지검 수사관이 수사내용을 고스란히 쌍방울에 알려줬고, 그 직후 김 전 회장은 싱가포르로 떠났다. 검사장과 차장급 검사 선배들은 10명 가까이 쌍방울에서 변호사나 사외이사로 일하고, 현직 수사관은 수사 기밀을 피의자에게 전해준다. 여기서부터 벌써 '무간도'다.
2.
검찰이 잡았을까? 사실은 경찰이 잡았다. 절차에 따라 주태국 한국대사관이 태국 이민국 경찰에 체포를 요청했다. 우리 정부가 여권을 취소시켰으니, 혐의는 일단 불법체류다(얼마나 강하게 체포를 요청했는지 직접 현장에 출동했던 태국 경찰은 "그가 무슨 혐의길래 이렇게 한국대사관이 체포를 지속적으로 강하게 요청하느냐"고 되물었다).
경찰청에서 파견온 경찰영사가 김 전회장이 자주 만난다는 몇몇 교민의 휴대폰 번호를 태국 경찰에 넘겨준 것이 결정적이였다. 태국 경찰은 이들의 GPS를 추적했고, 추적 7일만에 그 교민들 중 한 명이 태국 경찰의 레이더에 걸렸다. 그 P골프장이였다.
그런데 쏟아지는 관련 기사 어디에도 이런 내용은 없다. 총대를 멘 수원지검이 일부 출입기자들에게만 내용을 알려주면서 이 사건 어디에도 경찰은 없다.
3.
그런데 체포과정의 일련의 비밀스런 수사내용들이 온갖 기사에 다 노출된다. 김 전회장에게 공수됐다는 고등어에서, 김 전 회장이 소환에 불응할 경우 가게된다는 구치소까지 조목조목 내용을 다 안다 (사실 체포직후 김 전 회장은 방콕 돈무항 공항 인근 방켄 불법체류자 구금시설에 있었는데 이날은 변호사 접견도 안됐다) 기자들은 어디서 이런 수사 내용들을 들었을까?
이른바 법조출입기자단이다 (김만배도 이름난 법조기자였고 그와 억대의 돈을 거래했다는 기자들도 다 과거 법조기자들이다). 법조출입기자들은 변협이나 법원보다 대부분 검찰(대검과 고검)에 몰려 있다.
거기 상주한다. 정보가 없다보니 검찰이 조용히 불러준 내용을 줄줄이 정리해 낱낱이 보도한다. '우리 검찰이 잘 잡았어요!' 보도를 경쟁적으로 하다보니 심지어 '검찰총장의 노력이 빛을 본 것'이라는 보도까지 등장했다(서울신문).
소설같은 기사도 쏟아진다. 김 전 회장을 지키기위해 '기관총을 든 무장 경호원'이 있었다는 기사도 나왔다(기자들이 무간도 같은 영화를 너무 본다). 모 방송과 인터뷰한 목격자 교민 A씨는 자신이 통러의 고급 유흥주점에 갈 때마다 김 전 회장이 있었다고 했다(고급 유흥주점을 자주가는 분이다). 식사자리에서 김 전 회장을 처음 봤다는 그 목격자는 "형님 나중에 라오스 갈때 저 좀 데리고 가시죠"라고 했단다. 붙임성이 좋은 사람이다.
4.
이 수많은 법조기자들의 보도들이 네이버창에 중복돼 노출되면 혐의는 죄목처럼 굳어진다. 아직 기소도 안됐는데 이미 유무죄 윤곽이 나온다. 검찰이 송치하면서 기사가 나가고, 검찰이 기소하면서 기사가 나가고, 검찰이 구형하면서 기사가 나간다. 법원의 선고보다 구형 기사가 많은 경우가 허다하다.
법조기자들이 정보를 검찰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는 '죄형법정주의'를 한다면서 사실은 '죄형보도주의'를 한다. 범죄와 형벌이 법으로 정해진게 아니라, 수많은 보도가 한 방향으로 나가면서 이미 국민들의 머리속에는 범죄사실의 윤곽이 자리잡는다.
5.
다들 아는 이야기지만 이제 상수는 '전환사채'다. 나머지 수많은 혐의들은 허수다. 쌍방울은 한번 발행했다가 조기상환한 전환사채(CB)를 갑자기 제3자에게 되팔았다(누군지 모른다. 전환사채는 무기명이다). 전환사채는 원하면 돈 대신 주식으로 받을 수 있다. 이무렵 쌍방울 주가는 급등해 있었다. 갑자기 이 전환사채를 사들인 제 3자는 주식으로 전환하면서 막대한 이익을 가져간다. 쉽게 말해 제 3자에게 그냥 돈을 준 셈이다. 그 돈이 당시 이재명지사를 변호한 변호사들의 변호사비로 전달됐는지가 관건이다.
며칠뒤 한국으로 소환되는 김성태 전회장이 이 사실을 곧바로 인정할 수도 있다.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인정하지 않아도 검찰이 밝힐 수도 있다.
검찰이 곧 김 전대표를 구속하고, 기소하고, 구형하고나면 그때마다 기사가 쏟아질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한쪽에서 정교하게 정리된 주장만 만나게된다.
정작 가장 중요한 법원의 '선고'는 한참 더 오래 걸린다. 그리고 내년 4월 10일에는 총선이 열린다. 그 전에 대법 판결이 날 것으로 보는 법조인은 한 명도 없다. 그때까지 그림은 검찰이 그린다. 그 결과를 기자들이 친절하게 전해줄 것이다. 그 사이 우리의 '죄형보도주의'는 더 심화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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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대한 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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