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 / 2023. 4. 9. 16:55

만석꾼은 현재로 따지면 어느 정도 부자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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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는 어른, 아이 다 해서 평균내면 1 년에 178 kg 을 먹은 것이고, 지금의 석 기준으로는 연간 1.19 석. 당시 조선 후기의 석을 기준으로 하면 연간 2.34 석이며, 1 결은 11.4 명이 1 년 먹을 식량을 생산한다는 얘기.

조선 후기 당시 일본의 성인 남자의 1 끼 식사량은 조선의 성인여자보다 더 적고, 조선의 아동보다 조금 많은 양을 먹었죠. ( 한 끼에 쌀 205 g )

일본인들의 키가 당시 조선인에 비해 6 cm 작았다는 것이 유전 때문만은 아니란 얘기입니다.

위 식사량이 안 믿기실 분이 많을텐데, 1950 년대 밥그릇은 670 ml 나 되었습니다. 제삿밥 담듯이 수북히 담는게 미덕이었기 때문에 밥 900 ml 는 거뜬히 들어가죠. 이 정도 밥을 하려면 쌀이 357 g 은 있어야 합니다. ( 조선후기 계량단위 기준 딱 7 홉이네요. )

1960~70 년대 밥그릇만 해도 560 ml 이니 수북히 담으려면 쌀이 299 g 있어야 하고요.

요즘의 밥공기는 190 ml 밖에 안 되니 수북히 담아도 쌀 101 g 만 있으면 됩니다. ( 조선후기 어린아이와 동일 )

보통은 90 g 정도의 쌀만으로 짓는 것으로 알고요. ( 쌀 90 g 이면 딱 햇반 정도 분량 나옴 )



1 결의 실제 면적은 면적당 수확량에 따라 6 가지 등급이 매겨졌습니다.

위에 따르면 조선후기의 1 결은 1 ha 에서 4 ha 사이의 면적을 가졌습니다.

결은 수확량 기준으로 땅을 재는 줄자(?)를 달리 하는 셈이었지만, 매년 실제 수확량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었죠. (무려 20 년주기 갱신) 즉 수확량이라기보다는 풍년, 흉년 모두 포함해서 평균적으로 기대 가능한 수확량을 말한다고 보는 편이 더 적절했습니다.

1 등급 경지의 연간 수확량 기준이 세종대왕 전에는 300 말이었다가 그 뒤로는 400 말이 된 것은 농업 발달로 인해 예전보다 더 많은 수확이 가능해졌기에 반영한 것이겠고요.

어쨌든 조선 후기의 1 결은 (물론 평균적으로) 2 톤의 수확을 기대할 수 있는 경지인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가 무슨 원시시대도 아니고 사람이 한 줌 한 줌 쥐는 식으로 수확량을 쟀겠습니까 ? 그 많은 양을 일일이 ?

세종대왕 이전에는 평석으로 1 석짜리 용기 (91.7 리터) 에 20 번 채울 수 있는 양이 1 결이고,
그 이후는 전석으로  1 석짜리 용기 (122.3 리터) 에 20 번 채울 수 있는 양이 1 결인 것입니다.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38061 

 

가생이닷컴>커뮤니티 > 동아시아 게시판 > 조선시대의 쌀, 논 면적 계량 단위, 한 끼 식사량

예전부터 조선시대의 쌀 계량 단위를 혼동해서 어처구니없는 실수하는 사례를 많이 보죠. 특히 구한말 조선인들은 엄청난 대식가였다고 말하는 것은 웃픈일입니다. ( 복잡한 숫자 싫으시면 뒤

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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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쓰였던 화폐단위는 문(文), 전(錢), 냥(兩), 관(貫)이며 10문(文)이 1전(錢), 10전(錢)이 1냥(兩), 10냥(兩)이 1관(貫)이 된다. 우리가 흔히 옆전 한닢, 두닢이라는 표현을 쓰게 되는데, 이는 조선시대 가장 널리 쓰였던 상평통보(常平通寶) 동전 한 개, 두 개라는 의미이며 상평통보 한 닢은 1문(文)에 해당한다. 위에서 과부 주씨가 3두락(斗落) 즉 세 마지기를 60냥(兩)에 팔고 있는데, 당시 논 한마지기의 가격이 20냥(兩) 정도였음을 알 수 있다. 한 마지기를 200평이라고 할 때 요즘 논 값이 평당 4만원이라고 가정하면, 한마지기 논의 값은 대략 800만원 정도가 된다. 결국 800만원과 20냥(兩)이 비슷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대개 우리가 한 냥(兩), 두 냥(兩)이라고 할 때 별로 그 가치가 높지 않게 생각하는데, 조선시대(1877년) 한 냥(兩)의 가치는 지금의 40만원 정도로 매우 높은 것이었다.

http://www.jjan.kr/126584

 

[옛 문서의 향기]조선시대 논 한 마지기의 가격은?

1877년(고종14년) 과부 주씨(朱氏)는 남원(南原) 중방방(中方坊) 신기촌(新基村)에 있는 주자답(宙字畓) 3두락(斗落), 즉 13부(負) 3속(束)을 60냥(兩)에 팔면서 매매문서인 명문을 작성하였다. 그런데

www.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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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농지 1결은 20마지기 정도.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할때 천냥 빚은 현재가치로 4억원 정도.

만석꾼은 만 마지기를 소유한 사람. 1마지기가 200평정도. 위 그래프에서 22년 기준 전국 농지 평균가격이 24만원이므로

10,000마지기*200평*24만원=4,800억원 자산가.

만 마지기는 200만평이므로 순수익은 12억정도.

10만평에 3억 3천만원에 매출을 올려서 원가 2억 7천만원을 빼면 
6천만원의 순익을 올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lecture/15371176

 

귀농 1부. 벼농사 10만평 수익은 얼마나 될까요? : 클리앙

유뷰브에 제 경험을 바탕으로 시리즈로 올리고 있는 영상인데 강좌 게시판이 있어서 여기에도 올려 봅니다 솔직히 영상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서 영상 편집이나 이런걸 잘 못하고 나레이션만

www.clien.net

 

4800억을 운용하여 1년에 12억의 수익을 남긴다는 것은, 수익률이 0.25%라는 것.

저금리시대였을 때도 은행 이자 1%는 줬었는데, 1년 열심히 농사지어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이

은행에 넣어 아무것도 안하고 이자를 받는 것보다 반의 반 밖에 안되다니.

현대 한국에서 쌀농사는 수익성이 너무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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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전근대 시대 토지 1결은 평년작일 경우 쌀 20섬을 생산할 수 있는 면적을 말합니다. 조선 시대 토지대장에 올라와있는 농경지의 최대치가 150만결입니다.(국사 교과서에 나옵니다.) 1등전 1결이나 6등전 1결이나 면적은 다르지만 생산량은 같습니다.

https://m.cafe.daum.net/shogun/1Db/5075/comments

 

조선 농민 '개인의' 곡식 생산량(=인구부양력)이 어떻게 됩니까?

조선 농민 '개인의' 곡식 생산량(=인구부양력)이 어떻게 됩니까? 작성자ohs519627| 작성시간12.03.16| 조회수1266| 댓글 9 댓글 리스트

m.cafe.daum.net

1결이 20마지기이므로, 만석꾼은 농지 500결을 가지고 있었던 것.

조선시대 농경지 전체 150만결 중에서 500결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지

전체 농지 중 만석꾼이 0.03%를 소유했던 것. 전체 농지의 3000분의 1을 소유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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