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 / 2023. 3. 30. 23:55

흙수저의 34년 투자일기- 블라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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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을 앞두고,
퍼렇게 멍든 내 주식계좌를 보며 문득 강한 현타를 느끼며 똥글을 써봐....

어릴적에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나는 흙수저 편모가정에서 자랐어

그나마 다행인건 매매가로 몇천만원밖에 하지않는 빌라긴 해도 세가족이 같이 머리뉘일
집 한채는 남았었다는거?
( 대신 다른 빚들이 남아있었기에 그때까지는 우리 세가족 자산은 없다시피 했어 )

전업주부셨던 어머니는 아버지 돌아가신 후에 자영업을 시작하시면서
나나 여동생이 삼시세끼 굶지는 않고 학교도 대학교까지는 졸업할 수 있는 딱 그정도를
버셨어

대신 명절, 주말도 없이 일년에 365일 거의 대부분을 아침 일찍부터 새벽1시까지
그 좁은 가게에서 인생을 허비하셔야 했지만...

나도 나대로 스트레스에 불면증을 얻어가며 대학교 4년을 장학금 받으며 다녀야했고.

어릴적 돈 없어서 겪은 에피소드들이야 풀면 한보따리겠지..

진짜 가난한, 밥 조차 굶어야 하거나 사글셋방 전전해야 하는 그 정도의 가난까지는 아닌였던건
감사하지만 내 삶의 마인드에 부정적인 영향을 많이 미쳤던 건 사실이야.

어쩌다보니 지잡대기는 하지만 경영학과를 전공하면서 대학생때부터 자연스럽게 주식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때부터 용돈이나 아르바이트 비용을 모아 쌈짓돈으로 주식투자를 시작했었어.

대학을 졸업하자 마자 조건을 크게 따질 것 없이 빠르게 취업전선에 뛰어들었고
팔자에도 없던 상경생활을 시작했어.

첫 회사에 입사해서 신입사원 교육을 받으며 접했던 회사의 사업구조나 환경들이
나에게는 굉장히 장미빛으로 보여졌기에 나는 그동안 모아왔던 쌈짓돈을 자사주 매입에
쓰고싶다는 생각을 했어.
첫 회사였던 만큼 애사심을 갖고 오래 근무도 할 겸, 본격적인 주식투자도 할겸 해서 말이야.

그런데 어머니께서는 내 상경생활에서 쓰일 월세가 너무 아깝다고 생각하셨는지
큰아버지께 자취방 전세자금을 빌리셨고 부족한 돈은 내 쌈짓돈을 보태시길 권하셨지.

당시에 큰아버지께 빌린 돈이 한 3500만원 정도 됬고, 내가 모았던 돈이 500만원 정도 있었어.

나는 자사주를 꼭 사고 싶다는 생각에 전세를 반월세로 바꾸고 월에 20만원 정도 월세를 부담하더라도 2천만원 정도는 자사주를 사고 싶다고 말씀드렸지만 어머니께서는 극구 반대하시더라구.

어쩌겠어 우리 엄니 돈도 아니고 큰아버지 돈인데..
결국 어머니 뜻대로 나는 내 쌈짓돈까지 털어서 전세생활을 시작했고
거짓말 처럼 내가 입사한 직후부터 1년동안 회사 주가가 10배 가까이 오르더라고.

ㅎㅎㅎ...

사실 내가 봤던 회사의 본업이나 장래성 때문이 아닌 테마성 호재로 올라간 거긴 했지만..
앉은 자리에서 주가가 10배 폭등하는 걸 지켜보다보니 돌겠더라구.

당시에는 회사 내부 정보도 있고 하다보니 뒤늦게 그 폭등에 올라타고자 마통도 받고, 주변 친구들에게까지 돈을 빌려서 그 상승에 함께했고 10배가 오른 상태의 주가는 최종적으로 20배 가까이 올라갔어.

나 또한 그 과정에서 몇천만원 정도 수익까지 봤지만 최종적으로는 테마가 깨지면서 손에 남는 것 없이 되려 천만원 정도의 손실을 보면서 내 인생의 첫번째 기회는 그렇게 허무하게 날아갔지.

입사 하던 그 당시에 내가 원했던 대로 2천만원을 자사주 매입에 썼었더라면 20배 폭등 전구간을
다 먹지는 못했더라도 최소한 1억정도는 갖고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그 미련과 아쉬움...

그게 내 지금까지의 투자인생에 항상 걸림돌이 됬던 것 같아.

그 이후 내 인생에 두번째 기회가 찾아오는데 그게 바로 가상화폐

2017년에 나는 비트코인이라는 개념을 처음 접하게 됬어.
사실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지금과는 달리 2017년 당시에는 가상화폐가 지금처럼
대중화되지는 않았던 시절이라 나는 비교적 일찍 가상화폐를 접했다고 볼 수 있었지.

마침 주식투자에도 염증을 느끼고 있었던 나는 마통으로 갖고있던 2천만원 정도로 가상화폐
투자를 시작했어.

그때는 빗썸에서 잡알트코인은 매매도 불가능했던 시기로 기억하는데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그 외에 메이저알트코인 위주로 매매를 했었고 몇주만에 2천만원이 1억으로 불어나더라구.

그렇게 1억이라는 돈을 처음 만지면서 들었던 생각은
아 이제 이 1억을 훨씬 더 큰돈으로불려야지!가 아니라
1억이 우리 세가족한테는 정말 엄청나게 큰 돈인데 더 욕심부리는게 아니라 여기서 만족하는게
맞지 않을까? 라는 소극적인 생각이였지

앞에도 말했듯이 우리 엄니 전재산이라 해봐야 당시 매매가로 5천만원도 채 안하는
빌라 한채가 전부였으니까..

그런 고민을 하던 와중에 가상화폐가 폭락하면서 1억이 5천만원으로 줄었고
나는 5천만원이라도 지키자는 마음으로  가지고 있던 가상화폐들을 전량 매도하고 주식시장으로
복귀하면서 내 인생의 첫 가상화폐 매매는 그렇게 끝이났어.

그 시기즈음, 가정형편 상 내 인생에 결혼을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평생을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하는 사람이 나타났어.

그 사람 또한 가정형편이 나 못지않게 어려웠는데
결혼이야기가 오가기 시작하자 양가 부모님께서는 아무런 지원을 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
너무나 미안한 마음과 안타까움을 가지시더라구.

거기서 나는 나나 (전)와이프를 여기까지 건강하게 키워주신 것 만으로 충분히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양가 부모님의 그런 마음들을 지워드리고 싶은 마음에 욕심을 부리게 됬어.

가상화폐 매매 이후에 내가 가지고 있던 5천만원은 주식투자를 통해서 6~7천만원 정도까지
불어나있었는데 나는 이 돈을 다시 1억 이상의 돈으로 불려서 양가 부모님의 걱정 없이
신혼생활을 시작하겠다는 생각을 하게된거야.

그러다보니 내 매매스타일이 아닌 무리한 투자를 하기 시작했고
신용매매에 손을 대면서 7천만원정도 됬던 내 돈은 7천만원-> 1억-> 마이너스 7천만원으로
변해버렸어.

ㅎㅎㅎㅎㅎ

마이너스가 난 이유는 마통 + 친구나 친척에게 빌린 돈들

그 상황이 되고나니 결혼도 물리고, 그냥 고향내려가서 몸쓰는 노가다나 하며 엄니 모시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

나름대로 멘탈이 강한편인데도 불구하고,
아마 인생에서 가장 큰 회의감과 상실감을 느꼈던 시기가 아니였나 생각해.
진심으로 그냥 어딘가에 숨어서 숨만쉬며 살고싶더라구.

그런데 너무나 감사하게도 (전)와이프는 당시 내 그런상황을 이해하고 함께 해준 덕분에
어찌어찌 손에 빚만 쥔 채였지만 결혼이란걸 하게 된거야.

결혼식을 끝내고 나니 내 앞으로 축의금이 들어왔는데 결혼식 비용들을 다 치루고 나니
그중에 한 500만원이였던가 700만원이였던가가 남더라구.

나는 (전)와이프에게 허락을 구하고 그 돈으로 다시 가상화폐 매매를 시작했어.

그때는 빗썸외에 업비트나 여러 매매사이트들이 생겨난 시기였고 처음보는 알트코인들도
많이 생겼었지

그렇게 내 몇백만원은 거의 2억 정도로 불어났어

가장 기억에 남는 코인이 에이다? 라는 코인이였는데 그게 당시에 30원 40원 할때였으니
그때도 사실 가상화폐 매매하기에는 비교적 빠른 시기였지.

그런데 한 2억정도 돈이 생기고 나니까 또 내 머리속에는
이 돈을 제대로 불려서 인생한번 역전해보자는 생각이 아니라
그나마 손벌릴 곳 없는 내 흙수저 인생이 가여워서 일반적인 가정에서 시작하는 딱
그수준 정도로 살 수 있게 하늘이 도와준 건 아닐까 하는 마음...

그때까지도 본격적인 상승이 시작되기 전 시장이였는데
나는 기댈곳도, 뒤도 없다보니 큰 돈을 장투개념으로 존버하겠다는 깡이 도저히 안생기더라구.

실패하면 집에서 최소한은 해주겠지..라는 안전벨트 따위가 없으니까
그냥 매순간 절벽 바로 앞에서 매매하는 느낌?

그러니까 매매가 소극적이 되고,
남들처럼 큰 변동성들 겪어가면서 장투가 안되더라구.

결국 거기서 가상화폐 매매를 끝내고 2억을 손에 들고 나오게 됬어.
거기서 한 몇개월, 반년정도만 더 버텼더라면 단위에 0 하나는 더 붙었을텐데 말이야...

당시에 그 2억으로 무엇을 할까 많은 고민을 했었는데
나를 좋아하셨던 부동산에 관심이 많았던 부장님께서는 부동산 매매를 적극 추천하셨지.

그 당시만 하더라도 부동산 최근 고점과 비교해보면 집값이 반값도 채 안 할때라
충분히 매수를 해볼만 했던 시기인데
어릴적부터 가난이라는 천장에 계속 부딪혀 온 나에게는
몇억이라는 대출을 안는다는 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리스크로 느껴지더라구.

평생 5천만원도 안하는 집에서 살던 놈이
몇억짜리 집을 매매한다? ㅎㅎㅎ

글쎄 주변 지인들 중에는 원래부터 몇억짜리 집에서 시작했다보니
그런것들이 자연스럽기도 하고, 부모님께서 오히려 이른 부동산 매매를 장려하는 경우도
많던데 안타깝지만 우리 어머니께서는 그런 경제적 혜안은 없으셨지.

결국 나는 갖고 있던 돈으로 빚을 다 갚고 남은 1억 3천만원 정도로 다시 주식시장으로
복귀했어.

복귀하고 처음에는 몇천만원 정도 수익이 났었는데
얼마 안 있어 부동산이 폭등하기 시작하더니 나는 어느 순간 벼락거지가 되어있더라구.

한참 뒤에야 벼락거지 신세를 모면하고 싶다는 욕심에 뒤늦게 부동산을 매매하게 됬고
최고점에서 최고 높은 이율로 1주택자로 등극....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이후에 (전)와이프랑 이혼까지 하게되면서 멘탈은 갈려나갔고
홀로 주택자금을 갚아나가야 한다는 압박감에
다시 내 원래 투자스타일이 아닌 조급함을 앞세운 신용매매로 돌아서게 됬어

투자는 여유에서 나오는데
조급함과 신용매매의 결과는..뻔하지?

코로나19, 러우전쟁 등등 악재들을 겪어오면서 계좌는 고점에서 반토막으로 갈려나가고,
최근 반등장에서도 신용과 조급함으로 반등에 함께하지 못하는 중이야.

34살이 된 지금 시점에 내 손에 남은건
집 계약금으로 들어가 있는 내 돈 6천만원,
주식계좌에 한 6천만원.. 끗 ㅎㅎ

굳이 따지자면 마이너스 인생은 아니라는 것에 감사해야겠지만
내년부터 5억이 넘는 대출의 잔금과 이자를 갚아나갈 생각을 하면
눈앞이 캄캄해 ㅎㅎㅎ

투자에서 껄, 껄, 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알고있지만
투자하는 매 순간 생각해.

내가 조금만 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더라면,
아니 최소한 내가 경제적 가장이 되어야하는 수준이 아닌 평범한 가정에서만이라도 태어났더라면
조금은 더 큰 욕심을 부려볼 수 있었을 텐데 하고...

분명히 나에게는 기회가 여러번 있었는데..

대박을 맛봤던 이들 중에는 그저 손에 든 돈 정도는 다 잃더라도 인생이
벼랑 끝으로 몰리지는 않으니 큰 혜안도, 실력도 없이도 그저 그 물살에 몸을 맡기고
한두번 정도 버틴 결과가 대박으로 이어진 케이스들도 많으니까...

물론 결과적으로는 내 그릇과 실력의 부족이라는 걸 알고있지만
인정하기가 너무 싫다.

나랑 같은 환경,
나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지만
부단한 노력과 강한 정신력으로 나와는 다른 경치를 보고 있는 멋진 사람들도 있다고
생각해.

그렇게 되지 못한 건 내 탓이겠지.

그냥 갑자기 현타가 강하게 와서
넋두리겸 글 써봤어.

똥글 끗.........................
-----------
빨간딱지, 반지하, 사채업자 추노 당해본 사람으로써 욕심이 가득하고 마음에 가난이 찌들어있음

물질적으로 잘살고자 하는 욕심은 누구나 바라지만 현실은 그런 사람은 몇 없음

내가 선례(가족 사례)를 보다보니 앞서가려고 욕심부리며 뛰다가 고꾸라질바엔 늦어지더라도 걸어가자 라는 마인드라서 일수도 있는데 글만 보면 퀀텀점프는 존재한다는걸 몸으로 증명하려고 서두르다 오히려 고꾸라지는 스타일인것 같음

여유좀 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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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의 34년 투자일기....똥망중 (주식·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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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투자: 흙수저의 34년 투자일기....똥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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