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 / 2026. 5. 17. 10:48

놀러나 다니는 부자가 되고 싶습니다-법륜스님 즉문즉설

<놀러나 다니는 부자가 되고 싶습니다.>
ㅡ 페친 글 인용 ㅡ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에 출연한 한 30대 여성 질문자는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1년 정도 되었는데, 스트레스와 업무 부담 때문에 회사에 다니기 싫다고 토로했다. 그녀는 부자가 되어 일은 하지 않고 놀면서 예술 활동만 하며 살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현실에 분노하고 있었다. “부자들이 세금을 더 많이 내서 자신 같은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주장하며, “프랑스 혁명 때는 단두대로 처형도 하지 않았느냐”는 식의 표현까지 사용하며 자신의 가난과 좌절을 부자 탓으로 돌렸다.

이에 대해 법륜스님은 불과 200~300년 전 조선시대와 비교해도, 그리고 오늘날 여성 인권이 낮거나 경제적으로 훨씬 어려운 국가들과 비교해도 한국에 태어나 한국 국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이미 상당한 축복이자 기득권이라는 점을 이야기했다. 또한 마음속 불만과 피해의식이 통제되지 않은 채 계속 쌓이면 결국 자기 자신을 파괴하거나, 때로는 사회 전체를 향한 무차별적인 분노로 표출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사실 한국의 현실을 냉정하게 보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이미 고소득층에 세 부담이 극도로 집중된 구조이다. 2023년 귀속 기준으로 상위 1%는 전체 종합소득세의 약 절반인 49.3%를 부담했고, 상위 10%는 약 84.8%를 부담했다. 반면 종합소득세 납부자의 약 24.7%는 최종 세액이 0원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100명이 밥을 먹었는데 앤빵하는 대신 한 사람이 50명 것을 내줬고 다음 9명이 35명 것을 내준 것이다. 25명은 같이 밥 먹었는데 돈 하나도 내지 않은 것이고.

즉, 한국은 단순히 ‘부자도 세금을 낸다’ 수준이 아니라, 소수의 고소득층이 국가 재정의 대부분을 떠받치는 구조에 가깝다. OECD 국가들 가운데서도 고소득층에 세 부담이 최고 수준으로 집중된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부자들이 다 가져가고 충분히 기여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강하게 퍼져 있다.

이러한 구조는 건강보험 시스템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한국의 건강보험은 세계적으로도 드물게 소득뿐 아니라 주택·토지·자동차 같은 재산에도 보험료를 연동시키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 결과 고소득·고자산층은 매달 수백만 원 수준의 보험료를 부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통계적으로도 소득·재산 상위 20%가 전체 건보 재정의 절반 이상을 부담하며 정작 본인들이 낸 돈의 절반 정도만 혜택으로 돌려받고 있지만, 의료 서비스 자체는 누구에게나 거의 동일하게 제공된다.

물론 이것은 저소득층에 대한 사회 안전망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하지만 동시에 “실제로 누구의 돈으로 시스템을 지탱하고 있는가”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현실적 논의 역시 필요하다. 특히 고소득층과 기업들의 사회에 대한 기여가 너무 쉽게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오히려 분노와 적대의 대상이 되는 요즘엔 더욱 그렇다.

국민연금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대기업 지분을 7~8% 정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도 상징적이다. 이 기업들은 막대한 법인세를 납부할 뿐 아니라, 기업 가치 상승을 통해 국민연금 수익률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결국 연금이 고갈되는 시기를 뒤로 늦춰줌으로써 이러한 기업들은 ‘초과 이익의 국민 환수‘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이미 많은 국민들의 노후를 보장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걱정스러운 것은 일부 정치인들이 이러한 현실을 국민들에게 냉정하게 설명하기보다, 대중의 박탈감과 분노를 자극하는 방향으로만 움직인다는 점이다. 사회 갈등을 중재하고 생산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할 지도자들이 표 계산에 매몰되어 놀이공원의 ‘매직패스’를 없애라는 식으로 반기업 정서와 부자 혐오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하면, 결국 무너지는 것은 특정 계층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이고, 그 결과로 가장 큰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은 부자들이 아니라 경제적 하위 계층이다.

만약 법륜스님이 그 여성의 비뚤어진 피해의식에 맞장구치며, "맞습니다. 회사가 너무하네요. 세상이 불공평하고 부자들이 세금을 덜 내서 그렇습니다"라고 달래고 같이 부자를 탓했다면 그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그 여성은 자신의 비뚤어진 분노가 정당하다고 굳게 믿으며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려는 노력 대신 세상과 부자에 대한 증오를 키워갔을 것니다.

어쩌면 1년 겨우 버틴 직장마저 무책임하게 그만두거나 해고되었을 것이고, 스스로 경제 활동을 할 능력을 상실한 채, 방구석에서 세상만 원망하는 히키코모리가 되거나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커뮤니티에서 함께 세상을 원망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결과는 극단적인 무력감과 좌절감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으로 끝나거나, 아니면 “나만 이렇게 불행할 수 없다. 다 같이 죽자"는 심리로 사회나 무고한 타인을 향해 묻지마 폭행이나 범죄를 저지르는 파멸로 끝날 것이다.

복지는 ’사이다’ 감정을 채워주는 순간적인 것이 아니라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과 개개인 삶의 개선의 희망 위에 세워져야 한다. 누군가를 악마화하는 방식으로 유지되는 시스템은 결코 오래 버티지 못한다. 사회를 지탱하는 고소득층과 기업의 정당한 기여를 인정하고, 불필요한 적대감 대신 상생을 모색하는 사회체제야말로 진정으로 정의롭고 지속 가능한 공동체이다.

https://youtu.be/e1Cg0fz9h8s?si=kwr56AXgyvWpdn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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