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의 고산지대 마을에서는 구르카 용병이 되는 것이 한 가족의 생계를 바꾸는 길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남자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강인함과 체력, 인내심을 기른다. 구르카 용병들이 용감한 것은 단순히 어떤 민족적 기질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 사회에서 용병이 되는 길이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확실한 출구로 작동하기 때문에, 그런 인간형이 길러지는 것이다.
러시아 다게스탄도 비슷하다. 그곳에서는 남자들이 레슬링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격투와 신체 단련을 접하고, 강한 남성성의 모델은 레슬링과 연결된다. 지역사회가 그런 능력을 인정하고 보상하니, 그곳에서 훌륭한 MMA 선수가 많이 나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 두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하다.
어떤 사회가 반복적으로 보상하는 행동은, 시간이 지나면 그 사회의 인간형을 만든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사기꾼이 많이 나오는 것도, 아첨꾼들이 많이 나오는 것도 한국 사회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인이 유전적으로 더 사악해서가 아니다.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특정한 인간형을 보상해왔기 때문이다.
눈치 빠른 사람.
말로 포장을 잘하는 사람.
규칙의 허점을 찾는 사람.
겉모습을 그럴듯하게 꾸미는 사람.
상대의 욕망과 불안을 읽고 이용하는 사람.
책임은 피하고 이익은 챙기는 사람.
들키기 전까지는 능력자로 취급받는 사람.
이런 능력들은 한국 사회에서 꽤 자주 “영리함”, “사회생활 잘함”, “수완 좋음”, “융통성 있음”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반대로 원칙을 지키고, 느리지만 정직하게 일하고, 사실대로 말하는 사람은 “답답하다”, “눈치 없다”, “세상 물정 모른다”고 취급받기 쉽다.
이런 구조에서는 아첨꾼, 사기꾼적 인간형이 잘 자란다.
특히 한국 사회는 사람들의 욕망이 강하게 표준화되어 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서울 아파트, 투자 성공, 결혼, 빠른 계층 상승. 모두가 비슷한 것을 원하고, 그것을 얻지 못하면 인생에서 밀려난다고 느낀다. 그러면 사기꾼이 노릴 지점도 명확해진다.
“서울 아파트 잡게 해주겠다.”
“주식으로 부자 되게 해주겠다.”
“자식 명문대 보내주겠다.”
“결혼 잘하게 해주겠다.”
“이민 가게 해주겠다.”
“사업 성공하게 해주겠다.”
“너도 상류층이 될 수 있다.”
한국 사회의 사기는 대개 두 감정을 먹고 산다.
불안과 상승 욕망이다.
사람들이 자기 삶에 만족하고, 실패해도 존엄을 잃지 않으며, 천천히 살아도 괜찮다고 느끼는 사회라면 사기꾼이 먹고살기 어렵다. 그러나 모두가 초조하고, 비교에 시달리고, 한 번 뒤처지면 끝난다고 믿는 사회에서는 사기꾼이 쉽게 침투한다.
사기꾼은 완전히 절망한 사람을 노리지 않는다.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에게서는 돈을 뜯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기꾼이 노리는 사람은 불안하지만 아직 욕망을 버리지 못한 사람이다. 지금의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면서도, 조금만 더 하면 위로 올라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한국 사회는 그런 사람들을 대량으로 만들어낸다.
그래서 한국의 사기 문제는 단순히 처벌 강화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물론 사기 처벌은 강해야 한다. 사기는 타인의 돈만 훔치는 범죄가 아니라, 신뢰와 삶의 기반을 파괴하는 범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벌만으로는 부족하다. 사기가 잘 자라는 토양 자체를 보아야 한다.
그 토양은 정직보다 수완을 높게 치는 문화다.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문화다.
빠른 성공을 숭배하는 문화다.
사람을 스펙과 돈으로 평가하는 문화다.
실패자를 조롱하는 문화다.
정보의 비대칭을 이용해도 들키지만 않으면 능력으로 보는 문화다.
이런 사회에서는 사기꾼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다. 사기꾼은 그 사회가 암묵적으로 길러낸 인간형 중 하나다.
구르카 용병은 네팔 고산지대의 생존 구조가 만든 인간형이고, 다게스탄의 격투가는 지역의 신체문화가 만든 인간형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사기꾼 역시 한국 사회의 경쟁, 불안, 체면, 상승 욕망이 만든 인간형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어떤 사회든 자기가 보상한 인간형을 돌려받는다.
한국이 사기꾼을 싫어하면서도 계속 사기꾼을 만들어내는 이유는, 사기꾼의 기술과 한국 사회가 칭찬하는 “성공 기술” 사이의 거리가 생각보다 가깝기 때문이다. 사기꾼은 한국 사회의 바깥에서 온 괴물이 아니다. 한국 사회가 매일같이 칭찬하고 훈련시킨 능력이 가장 추한 방식으로 발현된 결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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