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 / 2026. 5. 16. 17:15

식민지 근대화론이 거짓인 이유, 수학과의 부재

수학과가 없었다는 것: 식민지 근대화론이 거짓인 이유

일제는 조선을 근대화했는가, 아니면 근대화를 봉쇄했는가.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말한다. 일제가 철도를 놓고, 병원을 세우고, 학교를 만들었으니 조선의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한국의 뉴라이트와 일본의 일부 극우 세력이 공유하는 이 주장은 겉으로는 '역사적 사실'을 내세우지만, 결정적인 사실 하나를 외면한다.

경성제국대학에는 수학과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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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과의 부재가 말하는 것

1924년 설립된 경성제국대학은 조선 유일의 제국대학이었다. 그러나 이 대학에는 법문학부와 의학부만 있었고, 이공학부는 무려 1941년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시점 에야 뒤늦게 신설되었다. 그마저도 전쟁 수행에 필요한 공학 계열만 설치되었다. 물리학과, 기계공학과, 전기공학과. 순수 수학을 탐구하는 수학과는 끝내 만들어지지 않았다.

반면 일본 본토의 제국대학들은 어떠했는가. 도쿄제국대학은 1881년에, 교토제국대학은 1908년에, 도호쿠제국대학은 1911년에 이미 독립된 수학과를 두고 있었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한 1910년 당시, 일본 본토의 주요 제국대학에는 이미 수학과가 존재했다. 경성제국대학이 패망 직전까지 수학과를 두지 않은 것은 시대의 한계가 아니라 의도된 설계였다.

성균관대 이상구 교수의 한국수학사 연구는 이를 명확히 진술한다. "조선에 단 하나의 수학과도 개설하지 않은 행태는, 수학과 같이 우리 민족이 일본인과 경쟁하여 충분히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에서의 고등교육 기회를 철저하게 봉쇄한 식민지 교육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기능적 수학과 사유하는 수학

물론 이공학부에서 수학을 전혀 가르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미적분, 선형대수, 수치해석 등 공학에 필요한 계산 도구로서의 수학은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수학을 배운 것'이 아니다. 추상대수학, 위상수학, 수리논리학처럼 인간이 스스로 사유하고 진리를 검증하는 훈련, 즉 근대적 이성의 핵심으로서의 수학은 철저히 배제되었다.

이 구분은 사소하지 않다. 근대 유럽에서 수학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었다. 칸트가 순수이성의 모범으로 수학을 든 것처럼, 수학적 진리는 권위가 아닌 이성으로 검증된다. 2+2=4는 황제도 총독도 부정할 수 없다. 순수수학을 배운다는 것은 권위 바깥에서 스스로 진리를 판단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이것이 식민 지배자에게 위협이었으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이것은 보편적 패턴이었다

지배 권력이 피지배 집단의 수학적 사고를 차단하려 한 것은 일제만의 행태가 아니었다.

러시아 출신의 세계적 수학자 에드워드 프렌켈은 자신의 책 <Love and Math>에서 증언한다. 1980년대 말 소련에서 유대인 수험생들은 모스크바 대학 수학과 입시에서 의도적으로 풀 수 없는 문제를 받거나 구술시험에서 낙제 처리되었다고. 비공식적이지만 조직적인 방식으로 유대인들의 수학과 진입을 차단했던 것이다.

일제의 조선, 소련의 유대인. 시대와 장소는 다르지만 패턴은 같다. 지배 권력은 피지배 집단에게 기능적 지식은 허용하되, 독립적 사유의 토대는 차단했다.

이임학이라는 증거

천재 수학자 이임학(1922~2005)의 이야기는 이 구조적 봉쇄를 한 인간의 삶으로 보여준다. 수학을 하고 싶었으나 경성제대에 수학과가 없어 물리학과에 진학해야 했던 그는, 졸업 후 조선비행기회사에 기술자로 취직했다. 순수수학자가 비행기 공장 기술자가 된 것이다.

해방 후 그는 독학으로 갈고닦은 수학 실력으로 경성대학 수학과 창설 멤버가 되었고, 이후 캐나다로 유학하여 군론(Group Theory)에서 '리 군(Ree Group)'을 발견, 세계 수학사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식민지가 봉쇄하려 했던 그 능력이, 결국 세계 수학계가 주목한 업적이 된 것이다.

근대화란 무엇인가

철도와 병원은 식민지 수탈을 위한 인프라였다. 그것이 조선인의 삶에 일부 편의를 가져다준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근대화의 본질은 인프라가 아니라 스스로 사유하는 인간을 만드는 것이다.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진리를 검증하며, 스스로의 삶을 설계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이 근대 교육의 핵심이다.

일제는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계산하는 인간은 만들었지만, 사유하는 인간은 만들려 하지 않았다. 경성제국대학에 수학과가 없었다는 단 하나의 사실이, 식민지 근대화론의 가면을 벗긴다.

근대화를 해준 지배자는 없다. 근대화는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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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성균관대 이상구 교수, 「한국 근대수학의 발전과 일제강점기 수학교육」, 2005년 한국수학사학회 발표  
에드워드 프렌켈, <Love and Math>,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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