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Taejun Kim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누리고 소비하는 것들 중에는 과거에는 사치품이었던 것이 많다.
역사를 보면 중세 유럽에서 후추는 매우 귀한 물건이었다. 아무나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귀족들은 부를 과시하기 위해 음식에 향신료를 과하게 뿌렸고, 오늘날 기준으로는 별로 맛있어 보이지 않는 음식까지 일부러 먹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대항해시대를 열게 된 원동력에도 향신료가 있었다. 오스만 제국의 융성으로 지중해를 통한 무역이 불안정해지자, 그들은 직접 인도로 가는 길을 찾으려 했고, 그 과정에서 대서양을 향해 나아갔다.
근대에는 설탕이 귀했다. 유럽의 왕족과 귀족들은 부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설탕으로 만든 화려한 조각들을 식탁에 올렸다. 오늘날에는 싸구려 간식처럼 여겨지는 솜사탕도 당시에는 사치품이었다. 파인애플도 마찬가지였다. 냉장 보관 기술과 온실 기술이 부족했던 시절, 파인애플은 너무나 귀해서 귀족들이 식탁 중앙에 놓고 부를 과시하기 위해 대여하기도 했다. 파인애플 대여를 전문으로 하는 사업까지 있었다.
이런 일은 먼 옛날에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한국에서도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바나나는 귀한 과일이었다. 지금 세대에게 바나나는 편의점에서도 쉽게 살 수 있는 과일이지만, 부모 세대 중에는 어린 시절 바나나에 대한 기억을 가진 사람이 많다. 누군가에게 바나나는 한때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후추를 뿌려 먹을 때마다 행복한가? 설탕을 먹을 때 성공했다는 감각을 느끼는가? 바나나를 먹으면서 계급 상승을 경험하는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현대인은 설탕을 너무 많이 먹지 않으려 걱정한다. 과거에는 귀했던 백색 정제당은 지금은 건강에 나쁜 싸구려 당분처럼 취급받고, 오히려 덜 정제된 사탕수수당이나 원당이 더 고급스럽게 팔리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날의 설탕 맛이 17세기 설탕보다 못할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기술은 훨씬 발전했고, 품질 관리도 더 정교해졌다. 오히려 지금의 설탕이 더 깨끗하고 안정적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왜 17세기의 사람들은 설탕을 먹으며 우월감과 행복을 느꼈고, 우리는 설탕을 먹으며 건강 걱정을 할까?
이유는 단순하다. 설탕의 맛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설탕이 주던 계급 과시 효과가 사라진 것이다. 17세기의 사람들은 설탕만 먹은 것이 아니다. 그들은 설탕과 함께 “나는 이것을 소비할 수 있는 계층에 속한다”는 감각을 소비했다.
경제학에는 파노플리 효과라는 개념이 있다. 특정 제품을 구매함으로써 그 제품을 사용하는 집단이나 계급에 자신이 속하게 되었다고 느끼는 심리를 말한다. 사람들은 물건을 살 때 그 물건의 기능만 사지 않는다. 그 물건을 소비한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의 이미지, 지위, 생활양식까지 함께 산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애플망고빙수, 수천만 원짜리 자동차, 수백만 원짜리 의류, 고급 호텔, 오마카세, 명품 같은 것들이 그런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그것들을 소비하면서 단순한 맛이나 기능이 아니라, “나는 이런 것을 소비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감각을 함께 소비한다.
나는 10만 원에 가까운 애플망고빙수를 먹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딱히 먹고 싶지도 않다. 과일이라면 베트남에서 먹었던 1kg에 천 원도 하지 않던 망고가 훨씬 맛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터키 남부에서 먹었던 1kg에 800원 하던 오렌지와 석류도 마찬가지다. 가격이 비싸다고 반드시 효용이 더 큰 것은 아니다.
자동차도 그렇다. 수천만 원짜리 차와 작은 중고차는 분명 차이가 있다. 승차감, 안정성, 디자인, 브랜드, 성능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나를 목적지까지 데려다 준다는 점에서는 같다. 어느 순간부터 가격 차이의 상당 부분은 이동 수단으로서의 기능이 아니라, 그 차가 주는 상징을 위해 지불된다.
그렇다면 내가 그런 것들을 가지게 되면 엄청나게 행복해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고대인, 중세인, 근대인들이 사치품이라고 여겼던 것들을 일상적으로 누리고 있다. 후추, 설탕, 바나나, 따뜻한 방, 온수, 개인 공간, 전기, 인터넷, 컴퓨터, 스마트폰. 과거의 왕족도 누리지 못했던 것들을 현대의 평범한 사람은 누리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사실만으로 매일 행복하지 않다.
나는 군대에서 이 사실을 강하게 느꼈다.
내가 있던 군대는 2010년대였음에도 환경이 매우 열악했다. 나무 관물대, 한 방에 50명이 들어가는 침상형 막사, 제대로 되지 않는 난방, 자주 나오지 않는 온수. 그때 내가 간절하게 원했던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따뜻한 공간, 온수, 나만의 자리, 조용히 쉴 수 있는 시간. 오늘날 한국인 대부분이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었다.
당시에는 그것만 보장된다면 내가 매우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역하고 나자 그것들은 곧바로 당연한 것이 되었다. 나는 온수가 나오는 집에서 지내고, 따뜻한 방에서 자고, 혼자 쉴 수 있는 공간을 갖게 되었지만, 그것을 매일 특별한 행복으로 느끼지는 않았다.
그때 나는 행복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욕망은 바닷물과 비슷하다. 아무리 간절히 원하던 것이라도, 어느 순간 그것이 일상이 되면 더 이상 행복의 원천이 되지 못한다. 인간의 행복은 다시 디폴트값으로 돌아간다. 과거의 결핍은 해소되는 순간 빠르게 잊히고, 새로운 욕망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한국에서 이런 말을 하면 꼭 돌아오는 반응이 있다.
“거지새끼 정신승리하지 마라.”
“애플망고빙수 먹어보기나 했냐?”
“스포츠카 타보기나 했냐?”
물론 나는 애플망고빙수를 먹어본 적도 없고, 스포츠카를 운전한 적도 없다. 하지만 나는 이미 과거의 귀족들이 엄청난 사치품으로 여겼던 것들을 매일 누리고 있다. 내가 군대에서 간절히 바라던 것들도 지금은 당연하게 누리고 있다. 그런데 그것들이 내 행복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했다면, 오늘날 사람들이 선망하는 사치품 역시 내 행복을 근본적으로 바꿔줄 것이라고 믿기 어렵다.
근대의 설탕과 오늘날의 명품은 본질적으로 비슷한 면이 있다. 둘 다 물건 자체의 효용을 넘어, 남들의 선망과 계급 상승의 감각을 함께 판다. 우리는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을 가진 나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을 산다.
복권도 비슷하다. 복권의 기대값은 언제나 복권 가격보다 낮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복권을 사는 이유는 당첨 확률 그 자체가 아니라, “당첨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과 상상을 사기 때문이다. 감정과 심리에도 가격이 붙는다.
나는 이것을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은 순수한 효용만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다. 상징, 기대, 이미지, 소속감, 우월감도 인간의 욕망 일부다. 파노플리 효과에 돈을 쓰는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비용이 지나치게 커질 때다.
그 욕망을 위해 삶을 갈아넣어야 할 때다.
그 소비를 하지 못한다고 자신을 실패자처럼 느낄 때다.
남의 선망을 사기 위해 자기 삶의 안정성을 포기할 때다.
우리는 물어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은 정말 그 물건인가?
아니면 그 물건을 가진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인가?
그 물건이 주는 효용을 원하는가?
아니면 그것을 소비하는 나를 부러워하는 타인의 시선을 원하는가?
사치품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치품이 행복의 조건처럼 느껴지기 시작하면 위험하다.
과거의 설탕은 귀족의 상징이었다.
오늘날의 설탕은 건강 걱정의 대상이다.
물건은 그대로인데, 그것을 둘러싼 사회적 의미가 바뀐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열망하는 많은 것들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 수 있다.
그러니 너무 비싼 욕망 앞에서는 한 걸음 물러서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지금 효용을 사는가, 아니면 선망을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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