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왜 가만히 있는 사람을 죽을 듯이 괴롭힐까? 이유는 간단하다. 본보기를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수열외가 있는 해병대를 생각해보자. 한 해병대원이 부조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기수열외가 되면, 주변 사람들은 그를 단순히 투명인간 취급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굳이 시비를 걸고, 죽어라 괴롭히고, 후임들에게도 이렇게 말한다.
“야, 저 새끼한테 가서 욕하고 한대 까. 저거 선임도 아냐.”
왜 굳이 그렇게까지 할까?
그 이유는 주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각인시키기 위해서다.
“저놈처럼 되고싶냐? 봤지? 질서를 깰 생각은 꿈도 꾸지 마라.”
즉, 괴롭힘의 목적은 피해자 한 명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진짜 목적은 그 장면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공포를 심는 것이다. 피해자는 한 명이지만, 메시지의 수신자는 집단 전체다.
고대나 중세 왕국에서 반역자를 처형하던 방식도 이와 비슷하다. 당시 반역자를 처형하는 데에는 매우 숙련된 고문 기술자와 처형인이 필요했다. 최대한의 고통을 주면서도 목숨은 붙여두었다가, 마지막 순간에 처형하는 정교한 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단순한 잡범처럼 목을 매달아 죽이는 방식은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그러나 반역자를 고통스럽게 처형하는 방식은 훨씬 많은 비용과 기술을 요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자들이 굳이 그런 방식을 택한 이유는 하나다.
보여주기 위해서다.
“왕권에 도전하면 단순히 죽는 것이 아니다. 인간 이하로 찢겨 죽는다.”
이 메시지를 군중에게 새기기 위해서였다. 처벌은 사법 절차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정치적 공연이었다. 처형당하는 반역자는 단순한 죄인이 아니라, 권력의 질서를 보여주는 전시물이 되었다.
현대 한국에서 산업재해를 일부러 어렵게 만들고, 하청 노동자들을 부득부득 착취하는 구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을 단지 싼 노동력으로만 이용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고통은 사회 전체를 향한 경고문으로 사용된다.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 “말 안 들으면 저렇게 된다.” “좋은 회사 못 가면 저렇게 된다.” “순응하지 않으면 저렇게 밀려난다.”
아이들을 협박하기 위해서는 본보기가 필요하다. 누군가가 비참하게 살아야 한다. 누군가가 위험한 곳에서 다치고 죽어야 한다. 누군가가 사회 밑바닥에서 모욕당해야 한다. 그래야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겁을 먹고 정해진 길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 약자의 고통은 단순히 방치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적극적으로 전시된다. 실패자는 그냥 실패자로 남는 것이 아니라 조롱의 대상이 되고, 이탈자는 그냥 내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낙인의 대상이 된다.
결국 한국 사회의 괴롭힘은 단순한 악의나 감정 배출이 아니다. 그것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공포의 장치다. 누군가를 공개적으로 짓밟음으로써, 나머지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저렇게 되고 싶지 않으면 알아서 기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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