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 / 2026. 4. 15. 13:37

경제적 자유라는 종교

https://youtu.be/70hYfHt2QIs?si=r14lVGZ9h6cQrOJN

 

이견을 조리있게 써주신 분들이 많습니다. 의견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도 다양한 의견을 접했습니다.
읽으면서 경제적 자유’라는 것에 대한 생각을 글로 정리해봤습니다. 대댓글 형태가 아니라서 좀 어색할 수도 있지만, 여기에 글을 남깁니다. (커뮤니티에도 남기겠습니다)

1.  
경제적 자유를 꿈꾸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이 꿈으로 인해 활력이 넘친다면 순기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돈이 굴러가서 노동을 안해도 되는 것을 어찌 바라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나도 군침이 싸-악 돕니다.

1. 
헌데 몇 가지 생각해 볼 점은 있습니다. 
경제적 자유라는 건 결국, ‘일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일터에 나가지 않고, 직장사람들과 부대끼지 않아도 되는 것을 원하는 것이지요. 

이 문제의 중심에는 ‘싫은 일을 마주하고 있는 나’가 있습니다. 
그럼 ‘싫은 일을 마주하고 있는 나’를 해결할 방도를 찾는 것이 현실적입니까, 아니면 10억을 버는 것이 현실적입니까? 
내가 상위 10% 안에 들지 못할 보통의 삶이라면 ‘10억 모으면 현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방향이 현실적입니까, 아니면 ‘현재 여기에 놓여 있는 나’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현실적입니까? 
물론 둘 다 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만, 아래의 이유 때문에 어렵습니다.

1.
미래에 어떤 ‘이상향’을 세워 놓으면, 내 삶의 추동력이 될 수도 있지만, 그 댓가는 현재의 삶이 ‘버텨야 할 어떤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 이상향을 미화하는 만큼, 현재의 삶이 비루해집니다. 
그 이상향은 중고등학교 때 ‘대학가는 것’이었고, 대학생이었을 땐 ‘취직하는 것’이었고, 나중에는 ‘승진하는 것’이 되어 왔지 않습니까? 모두에게 익숙한 게임입니다. 
이게 심해지면, 현재의 하루하루는 그 이상향을 위해 ‘갈아넣어야 할 것’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한치의 오차도 없는 자기부정입니다. 상을 세우고 상을 사랑하는데, 자기는 부정하는 것입니다. 

1.
제가 말하는 ‘보통의 삶’, ‘자존감은 소유가 아니라 책임에서 나온다’, ‘수저게임 은퇴자’ 등은 모두 비슷한 것들을 얘기합니다. ‘미래의 괜찮아진 나’라는 상을 세우고 ‘현재의 나’를 그 밑에 갈아넣지 말고, 현재의 나를 조금씩 수용하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입니다 (팩트에 기반해서). 그래서 ‘미래를 위해 비참한 현실을 버틴다’는 것이 아니라, ‘내 현실에도 나름 괜찮은 점은 있다’를 천천히 늘려가는 것이지요. 
오히려 그런 수용이 있어야 현실이 풀려 나가는 것이지, 반드시, 빨리 벗어나자는 인식은 오히려 나를 묶어버립니다. 
마치 현재의 삶이 한 치도 안 변해도 괜찮을 것처럼 살아야, 경제적 자유가 오던 다른 자유가 오던 한다는 말입니다. 

1. 
경제적 자유같은 목표의 또 다른 문제는, 그걸 못 이루면 실패한 삶이 되고, 이루고 나면 허무해진다는 것입니다.
90% 이상의 사람이 현금성 자산 10억을 갖는 것에 실패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아주 천천히 진행되는 과정이지, 50살에 주사위 던져서 ‘10억 나오나 보자’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나이먹으면서 서서히 명확해져가는, 괴롭고 어두운 과정입니다. 목표가 높고 명확했으니, 실패의 과정도 어둡고 힘들 것을 각오해야겠지요.
그럼 성공한 10%는요? 이것만을 목표로 삼고 20-30년을 살아내 이뤄낸 사람은 보통 허무함에 빠집니다. 어떤 목표던지 내 마음자세가 아닌 외부적 기준 (ex. 몇 억 이상 자산, 대기업 임원승진 등)으로 된 것을 이루고나면 허무해집니다. 새 핸드폰도 정작 갖고 난 후엔 익숙해지는 것처럼요.

 1.
현실에서 경제적 자유가 얘기되는 걸 보면 일부는 굉장히 이상화되어 있습니다. “천국에 가면 부족함이 없고, 싸움도 없고 스트레스도 없다. 먹어도 배고파서 먹는게 아니라 즐거움을 위해서 먹는 것이고” 등과 같이 거의 종교화된 개념처럼 말해집니다. 
예를 들면 “일론 머스크를 봐라. 일을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아실현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지만, 좋아서 하는 일이다” 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이재용을 보라. 사업을 위해서 미국, 유럽 오가며 CEO들 만나고 누구보다 바삐바삐 살지 않는가? 이게 자유로운 모습인가?” 라고 하면 “이 사람은 싫은 일을 하는게 아니라 자아실현 중이다”라고 합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여전히 과도하게 이상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돈 없는 사람의 일은 그만하고 싶은 일이고, 돈 많은 사람이 하는 일은 좋아해서 하는 일이라는 이 도식은 너무나 단순합니다. 
(여기서부터는 경제적 자유에 대해서 굉장히 이상화하고 있는 분들을 위한 글입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투자도 좀 하고 부수입도 좀 만들고 하는 분들한테는 해당이 안될 것입니다)

1. 
모든 사람이 어느 정도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며 살아갑니다. 일론 머스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은 돈이 엄청 많다. 언제 그만둬도 되지 않느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 사람한테 그 일은 자기 인생을 갈아 넣은 일입니다. 어떻게 ‘언제 그만두어도 상관없’을 수 있을까요? 
돈이 많으면 꿈이 커지고, 꿈이 커지면 타인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Space X 같은 프로젝트는 한 사람의 돈 만으로는 불가능하고, 투자자들의 돈이 필요합니다. 그럴려면 돌아다니며 투자해달라고 설득하는 일을 해야 하겠죠. 본인은 처음에 우주사업이 ‘쿨해서’ 기획했다 하더라도 수익을 바라는 투자자들의 입장은 다릅니다. 아마 창업자의 꿈을 일부 희생하더라도 수익성 사업을 해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얽히고 설켜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돈 많은 사업가라서 언제든지 관둬도 되는 일을 취미처럼 하는 것일 뿐이다’라는 인식은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호랑이 등에 탄 사람은 옆에서 보면 ‘어떻게 호랑이를 타고 달리냐. 대단하다’고 여기지만, 그 등에 탄 사람의 입장은 다릅니다. 구경하는 사람이랑 정작 크게 다르지 않은 면이 있는 것입니다. 

‘하기 싫은 일을 안해도 되는 위치가 있고, 난 거기로 가야 하는데 아직 그 상태가 아니다’ 류의 생각이 비현실적인 것입니다. 비현실에 기반해서 나의 오늘을 부정하는 일입니다. 엄청난 부자도 보통의 회사원도 똑같이, 하기 싫은 일을 하기도 하고, 자기 좋은 일을 하기도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 어디에도 깨끗하게 소독된 삶은 없습니다. 누구나 먼지도 묻고 흙도 묻지만 툭툭 털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1.
그래서 “돈 때문에 내 목줄을 남에게 걸지 않아도 되는 상태 (경제적 자유)”는 돈을 벌어서 달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려놓음으로써 달성가능한 것입니다. 많이 내려놓으면 많이, 조금 내려놓으면 조금 달성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려놓으면 바로 나타나는 것이지, 유예되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부자는 언제 내려놔도 편안해질 수 있지 않느냐’고 생각하지만, 내려놓으면 편해지는 것은 부자던 빈자던 상관없이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내려놓으면 편해지는’ 원칙은 자산의 유무와 관계없이 적용됩니다. 싯다르타는 아예 길에서 걸식을 하는 입장이어도 내려놓으면 누구보다 편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람이어서 회자되는 것이구요.

1. 
‘로또에 맞아도 현재의 일을 계속 하겠다는 사람들’이 경제적 자유다라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심지어 이런 사람들에게 경제적 자유는 안중에 없습니다. 노동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까요. 돈이 있어도 할 일을 이미 하고 있으니까요. 
이 상태는 10억을 벌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자기가 스스로의 일을 의미있게 느끼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문제의 중심엔, ‘싫어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 나’가 있습니다.
‘그만두고 싶은 상태의 나’
더 적나라게 말하면 ‘내 인생이 싫은 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경제적 자유를 얻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경제적 자유를 원하는 것 자체가 문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1. 
모두가 ‘편해진 상태’를 꿈꿉니다. 근데 그 여부를 ‘외부적 조건’에 걸어놓고 현재를 유예하곤 합니다 (ex. 자산). 
경제적 자유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면 복잡할 것 없이 ‘편해진 상태’를 원하는 것입니다. 헌데, 이 편해지는 것을, 엄청나게 희박한 확률의 외부조건에 걸어놓을 필요가 있을까요. 이 편해짐은 사실, 외부조건에 걸린 것도 아니고, 미래가 올 때까지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지금 여기 내 현실을 수용하는 만큼 당장에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1. 
‘얼마가 있으면 일을 안해도 되는가?’ 호기심에 계산을 해봅시다. 자산*수익률로 계산을 해봐야겠지요.
한달에 300만원으로 생활하는 가정이 있다고 하지요. 원금을 까먹지 않는 장기투자를 한다고 합시다. 수익률을 연 3%로 잡았을 때 필요한 현금성 자산은 12억원입니다. 만약 한달 생활비를 200만원대 중반으로 맞춘다면10억원 정도가 필요하구요.
이건 큰 돈입니다. 한국 40대의 순자산 중앙값이 2억원대 후반입니다. 가장 자산규모가 높은 연령대인 50대가 3억원 정도 되구요. 이 와중에 12억 현금성 자산은 정말 대단한 규모이지요. 대한민국 가구 상위 8%의 위치입니다. 

(수익률에 대한 의견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safe withdrawal rate이라고 해서, 매년 자산의 4%정도를 써도 30년 이상 버틸 확률이 높다는 기준을 널리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평균 수명의 증가 등으로 안전하게 3-3.5%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노동을 하지 않을 계획이면 더 안전한 접근이 맞을 것 같구요.)

1.
경제적 자유의 의미가 다양합니다. 그리고 이것에는 흐름이 있습니다. 
한 10년 전쯤에 미디어에서 한창 많이 소비될 땐, “경제적 자유 이루고 여행만 다닙니다” 식의 좀 판타지스러운 의미가 많았다면, 최근이 될수록 그냥 ‘노후 소득에 일조 할 수 있을 정도의 자본소득을 만들어놓는’ 의미가 되어가는 경향이 큽니다. 이런 경우에는 사실 경제적 자유라는 거창한 말을 붙이기 보다는 90년대부터 진행된 ‘금융 투자의 대중화’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경제적 자유라는 것의 핵심에는 최소 ‘노동의 졸업’에 대한 희망이 있다는 것에는 많은 분들이 동의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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