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 / 2026. 3. 2. 21:23

김밥사례로 보는 공유지의 비극

누가 김밥 다 가져 갔어?

아침에 김밥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매일 아침 김밥이 각 층마다 세팅되도록 하는 것은 꽤나 손이 가는 작업일 수 있었으나 ‘동료들이 원한다는데!’라는 마음으로 담당 부서는 긍정적인 검토를 했고, 그렇게 출근 시간에 맞춰 각 층에 김밥이 놓이게 되었다.

엄청나게 고급스럽다거나 특별한 김밥은 아니었지만 직원들의 반응은 매우 좋았다. 편의점 김밥과 달리 차갑지 않았고, 재료도 특별할 것은 없었지만 신선했다. 서둘러 출근하느라 아침밥을 먹지 못한 직원들에게 김밥은 고단한 하루를 시작하는 소소한 위안이 되어 주었다.

문제는 김밥이 너무 맛이 있었다는 점에 있었다. 김밥은 금새 동이 나는 경우가 많았다. 담당자는 김밥 수량을 늘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김밥이 남았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음식을 버리는 것은 마음의 부담이 컸다. 상온에 보관했기 때문에 조금만 오래 방치되도 김밥이 상할 위험도 있었다. 그렇다고 김밥을 넣을 업소용 냉장고를 따로 준비할 수는 없었다. 냉장고를 넣으려면 인테리어 공사까지 다시 해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담당자는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을 내렸다. 김밥 수량을 필요한 수량보다 약간 줄여서 발주한 것이다. 그러자 출근 시간에 맞추어 각 층에 놓인 김밥은 빠르게 소진되었다. 상할 위험도 없었고, 관리도 편했다. 매일 매일 수요량에 맞추어 김밥 발주량을 변경할 필요도 없었고(원래 담당자는 김밥 말고도 할 일이 많았다), 혹시라도 김밥이 남아서 상할까봐 시간 맞춰 점검할 필요도 없었다.

그 뒤로 일어난 사건들은 아래와 같다.

- 김밥이 부족하자 일찍 온 사람들은 옆 자리 동료를 위해 여분의 김밥을 챙겼다.

- 그러자 김밥이 없어지는 시간이 점점 빨라졌다.

- 한 명의 직원이 부서 전체의 김밥을 챙기는 일도 발생했다. ‘김밥셔틀이 된 것 같다’는 자조적인 목소리도 나왔다.

- 눈 앞에서 한 명이 열 개의 김밥을 가져가는 바람에 자기 먹을 것이 없어진 직원이 게시판에 ‘그러지 좀 맙시다’라는 원색적인 비난글을 올렸다.

- 본인 먹을 김밥만 가져가자는 사람들과 옆 자리 동료 김밥을 챙기는게 뭐 어떠냐는 의견이 팽팽하게 갈렸다. (걸리버 여행기를 보면 삶은 달걀을 뾰족한 쪽과 뭉특한 쪽 가운에 어느 쪽으로 깨야 하는가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는 모습이 나온다)

- 다른 사람이 대신 갖다 준 김밥이 그 사람 자리에서 오랜 시간 방치되는 경우도 발생했다. 출근 시간이 늦거나 외근하고 돌아온 사람, 휴가인 줄 모르고 김밥을 챙긴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결국 한 명이 자기 책상 위에 오랫동안 방치된 김밥을 먹고 탈이 났다.

- 그 모습을 보고 ‘자신이 먹을 김밥만 가져가자’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두 개의 김밥을 챙기는 동료를 보고 화를 냈다. 그런데 김밥 두 개를 가져가던 동료 중에는 자신이 두 개를 먹고 싶어서 가져간 경우도 있었다. 김밥 하나를 다 먹기에는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 있어 사이즈를 약간 작게 해서 발주했기 때문이었다.

- 그러자 자신이 먹는 경우에는 여러 개를 가져가도 된다는 주장과 그것을 허용하면 옆 자리 동료를 위해 가져가는 사람을 구별할 수 없다는 주장이 갈렸다. 논란이 격해지자 누군가 2개까지는 허용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중재안을 내놨다. 다른 사람은 2개는 야박하니 5개까지는 허용하자는 의견을 냈다.

그래서 실제 결론은 어떻게 났을까.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어렵지 않게 그 답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김밥은 없어졌다.

그리고, 김밥과 비슷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다른 종류의 간식들도 같이 없어졌다. 캔이나 봉지와 같이 밀봉상태에 있어서 상하지 않고, 싱크대 서랍 안에 재고를 쌓아둘 수 있는 간식들만 남았다. 이후 누군가 새로운 제안을 할 때마다 김밥과 같은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지를 먼저 검토하게 되었고, 그러한 일이 반복되자 사람들은 제안 자체를 하지 않게 되었다.



있으면 맛있게 먹고 없으면 누군가 다른 동료가 맛있게 먹었겠거니 생각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웠을까.

김밥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사람들, 블라인드를 뜨겁게 달구었던 사람들이 누군지 나는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회의 시간에 회사의 운명을 가를 수도 있는 이슈에 대해서 그렇게 진지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냈을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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