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 / 2025. 3. 5. 16:46

저출산현상과 노년층 자살의 연결고리

예전에 82쿡에서 어느 어머니의 글을 보았다. 그이는 남편과 이혼하고 워킹맘으로서 홀로 남매를 키웠다. 갖은 고생 끝에 학자금 대출 하나 없이 좋은 대학 보냈던 아들이 국내 모 증권사에 들어가 고액의 연봉까지 받게 되어 이제는 한시름 놨구나 기뻐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넌지시 묻길 혹시 자기 몰래 모아놓은 돈이 있느냐 했다. 그런 건 없다 하자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해 무슨 일인가 캐물으니 아들은 '모아놓은 돈  있으면 결혼할 수 있을까 했는데 없다니 나는 결혼 같은 거 못하는 거지 뭐' 하고 담담하게 답했다. 어머니는 큰 충격을 받고 기혼여성 커뮤니티에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 내가 아들한테 더 어떻게 뭘 해줬어야 하는 거냐 내가 돈을 더 모아놨어야 하는 거냐고 글을 올린 거였다.

우리 아줌마들은 다들 입에 게거품을 물고 이구동성으로 배은망덕한 아들놈을 욕했다. 진짜 이건 지금 생각해도 쓰레기 같은 경우였고 절대로 봐줄 수 없는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최근에 이것과 비슷하지만 조금 더 완화된, 좀 더 슬프고 삶의 맥락이 많은 이야기를 보았다.

어느 가난한 집 아들이 블라인드에 올린 글이다. (아들은 쿠팡 본사면 상당히 좋은 직장이다) 누나가 최근 공기업에 들어가게 되어 부모님이 결혼의 기대를 비쳤다. 예쁘고 똘똘하고 좋은 직장까지 가졌으니 부모로서 그런 기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자 누나는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비혼 선언을 했다. 그리고 자기는 결혼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못 하는 것이다(부모가 가난해서 못 한다)라고 담담하게 조목조목 설명했다. 누나의 현실과 맞닥뜨리고 충격을 받은 부모님은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 잠을 자기 시작했다. 깨우기가 두려운, 거의 잠자는 숲속의 부모님이다...

이 이야기를 읽고 많은 것이 떠올랐다. 글이 올라온 초기에 커뮤니티에 올라온 댓글들을 거의 다 읽었다. 남초 여초 다 읽었다. 놀랍게도 남초건 여초건 분위기가 거의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은 시간이 지나서 댓글란 분위기가 난잡해졌다. 초기 댓글들이 중요하다. 남자건 여자건 젊은이들은 이 비혼 누나의 심경에 크게 동조하고 동정하고 있었다. 그것은 '가난'이라는 같은 범주 속에서 같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먼저 반응하고 먼저 댓글을 달았기 때문일 것이다(그리고 또 한 가지, 펨코 댓글란이 의외로 청정한 것을 볼 수 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나도, 나도, 나도 똑같은 상황이라고 댓글을 달았다. 슬픔과 한숨과 체념이 배어나왔다.

어떤 이는 댓글에서 말했다. 자기가 좋아하던 사람과 사귀다가 미안해서 헤어졌다고. 그이와 결혼하면 앞이 빤하게 보여서 고생시키기가 싫어서.

어떤 이는 말했다. 자기가 돈을 벌어서 집을 구해 가난한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데 부모님은 자꾸만 자기에게 결혼을 하라 한다. 그런데 내가 결혼을 하면 부모님이  이 집에서 나가셔야 한다. 그렇잖으면 내가 나가야 한다. 그런데 부모님은 그 생각을 안 하셔. 이 말을 차마 부모님에게 할 수가 없다...

누군가 댓글에서 말했다. 나도 저 누나와 똑같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우리집도 가난한데 나는 직장이 좋아서 부모님이 자꾸만 결혼하라 한다. 그래서 대답했다. 요즘은 결혼하려면 세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부모의 노후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둘째, 부모가 증여세 한도를 감안해 최대한 얼마를 땡겨줄 수 있는지 액수가 나와야 한다. 셋째, 결혼 당사자 본인이 스스로 모아놓은 돈이 있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내가 처해 있는 사회에서 기본적인 결혼 스펙의 범주다. 각 조건마다 구체적인 액수는 달라지더라도 범주는 없앨 수 없다. 이걸 충족해줄 수 있느냐고 묻자 그 뒤로 부모님은 자기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기 시작했다고. 물론 이것은 부모의 입을 막기 위해 일부러 '쎄게' 말한 것일 테다.

예쁘고 직장 좋은 누나가 왜 결혼을 하지 않는가? 누나는 이념적으로 비혼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녀는 가능하면 결혼을 하고 싶다. 하지만 자기와 비슷한 처지의 남자를 만나 결혼하면 그 삶은 지금까지의 힘겨운 삶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자기 부모 비슷한 시댁을 만나고 남의 부모까지 네 명의 노인을 부양해야 한다.

예전 같으면 신부가 똑똑하고 예쁘면 소위 '시집을 잘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여성들은 그런 봉건적 선택지를 취할 수 없다. 그 어떤 모랄도 그녀를 보호해 주지 못한다. 자기보다 잘난 남자를 찾아 부잣집과 결혼관계를 맺는 것이 싫다. 매매혼에 팔려가는 신세처럼 상대편에게 굽혀야 할 것이다. 아무리 착한 사람을 만나더라도 가난한 부모님이 손을 벌리면(벌리지 않을 수가 없다) 도와줘야 하고 그때마다 굴욕을 느낄 것이다. 아니 그전에 시댁 관련자 누구나가 신붓감으로서 사사건건 지긋지긋하게 자신을 평가하고 모욕할 것이다. 직접 그런 말을 듣지 않더라도 신부 본인이 끊임없이 의식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누군가는 익명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 공동으로 신부의 자질이나 배경과 혼수를 평가하기도 할 것이다.

또 어떤 이가 댓글에서 말했다. 정치인들은 우리 현실을 모른다. 그들은 이미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 사람들에게 돈을 주는 정책만 쓰기 때문에 부자들에게만 퍼주고 있다. 지금 돈 받는 사람들은 정부가 돈을 주건 안 주건 애를 낳을 사람들이다. 아예 결혼 자체에 엄두를 못 내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그 댓글을 보고 나는 생각했다. 정말로 돈은 가진 이들 사이에서 돌고 돈다. 물려받을 것이 이미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말이다. 물려받을 것이 없는 이들은 오히려 부모를 부양하느라 자신들이 결혼할 돈을 써버린다. 지금 저출산 정책으론 가난한 이들에게서 - 그것도 부모 부양의 의무를 차마 방기하지 않는 마음 선한 젊은이들에게서 - 결혼자금을 빼앗아 부자들의 양육비로 주는 꼴이다.

부모의 노후, 정말 무서운 말이다. 가난한 20대들의 평생을 저당잡는 이 짐의 이름을 중산층들이 먼저 선취해서 빼앗았다. 중산층은 자신들의 노후대비와 자녀들의 결혼자금을 위해 상속세도 완화하고 금융투자세도 없애고 종부세도 위협하고 그러면서 가난한 이들이 평생을 설계해야 할 결혼자금을 탈취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가난은 죄악이다'라는 끔찍한 신화의 강력한 신도이자 전도사가 된다.

어떻게 해야 가난한 이들이 결혼을 결심하게 할 수 있을까? 최소한 네가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하더라도 남의 부모까지 네 명의 노인을 부양하는 족쇄를 차지는 않아도 된다는 약속을 해 줘야 하지 않을까? 그것을 중산층은 악다구니같이 사적으로 해결하려 하지만 - 그래서 종종 나이든 이들의 커뮤니티에 '제가 노후자금이 20억밖에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죠?' 같은 어처구니없는 글이 올라오곤 하는데 - 국가가 해결하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최소한 가난하지만 선량한 부모가 자식들에게 나를 부양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으니 고민하지 말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라고 말할 수 있도록...

우리가 노인의 삶과 복지를 등한시한 결과 가난한 청년들의 결혼을 막고 있는 것이다. 사회 속의 모든 삶은 연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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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예쁘고 직업 좋은데 비혼 선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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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고 직업좋은데 비혼선언한 여자

비혼선언이라기보단 결혼포기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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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쿠 - 누나 예쁘고 직업 좋은데 비혼선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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