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의 꿈은 자유가 아니라 자기 노예를 갖는 것이다."
영화 <글래디에이터 2>에서 빌런 마크리누스가 던진 이 서늘한 독백은 인간 욕망의 가장 어두운 심연을 고발한다.
압제에서 벗어난 피압박자가 갈망하는 종착지가 평등한 해방이 아닌, 자신이 새로운 압제자가 되는 '권력의 치환'이라는 통찰이다. 참으로 지독한 인간 본성의 괴물성이다.
억압받는 사람이 억압 자체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 억압하는 위치를 갈망하게 된다는 역설이다. 즉, 시스템을 바꾸려는 게 아니라 그 시스템 안에서 위로 올라가려는 욕망을 꼬집는 것이다.
이 날카로운 대사는 정신의학자이자 사상가인 프란츠 파농(Frantz Fanon)의 통찰과 완벽하게 맞닿아 있다.
파농은 저서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에서 피식민지인이 지배자를 증오하는 동시에 강렬하게 선망하는 파괴적 심리를 분석했다.
"억압받는 자들의 이상은 압제자가 되는 것"이라는 게 핵심이다.
그들은 억압의 구조 자체를 부수기보다, 자신이 그 구조의 정점에 올라 타자를 지배하길 원한다. 구조적 모순의 혁파가 아닌 '주인과의 자리바꿈'이 그들의 왜곡된 목표가 되는 순간, 괴물은 복제된다.
여기에 프리드리히 니체의 유명한 경고를 더하면 이 비극의 메커니즘은 완성된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과정에서 자신마저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
악마 같은 권력에 대항해 싸우던 이들이 결국 그 폭력의 메커니즘을 완벽하게 학습하고 잠식당해, 스스로 새로운 악마가 되는 과정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시몬 베유도 1934년에 발표한 저서 '자유와 사회적 억압에 관한 성찰'에서 혁명이 가진 근본적 한계를 날카롭게 지적했다.
그는 역사상 그 어떤 혁명도 억압 자체를 소멸시키지 못했으며, 단지 "억압의 주체(지배 계급)를 바꾸었을 뿐"이라고 단언했다.
"혁명가들은 권력을 잡기 전까지는 피억압자의 편에 서지만, 권력을 잡는 순간 새로운 억압자가 된다. 이것은 개인의 도덕 문제가 아니라 권력 자체의 속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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