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앞으로도 계속 일을 할 생각입니다. (1)
처음 개원 한 의원도 몇 년 하지 않았지만 꽤 잘 되었고 투자도 생각보다 잘 되어주어 건방지게 은퇴를 생각했습니다.
실제 은퇴를 생각하니 일 하기 너무 싫더군요.
대학 교수님 두 분이 동업 하신다기에 헐값에 넘기고 저는 자유를 향해 뛰쳐나갔습니다.
당시에는 코로나 시기였고 집사람과 아이들 세 명 모두 캐나다에서 유학 중이었습니다.
기러기 아빠라는 이름도 싫었고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이젠 일 안하고 아이들 '등하교 도우미' 하면서 집 사람 일도 도우며 살아야지 마음먹었습니다.
가족들한테는 ‘코로나 시기라 family reunion이유로만 캐나다 입국이 된다’는 점을 병원 양도의 사유로 설명했습니다.
캐나다에서 아이들과 같이 지내고, 다시 한국으로 귀국해 국제학교에 입학을 시킬 때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집사람도 제가 필요했고, 아이들도 제가 필요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부터 집에 있는 제가 집사람 입장에서는 매우 걸리적 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 간 후 제가 집에서 보이는 것 자체가 가정 불화의 원인으로 꼽히기 시작했습니다.
어디든 나가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오전 10시부터 모든 카페는 동네 아주머니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하고 혼자 책 읽는 남자는 이상하게 비춰지는 모양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한국에서 ‘3,40대 남자’가 은퇴해서 혼자 있을 곳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집사람은 제가 여행 다니는 것도 얼마든지 용인했습니다.
집에만 있지 말아달라 했습니다.
혼자 지방 여행도 다니고 투자 설명회도 다녔습니다.
하지만 혼자 여행을 해보고 나서, 저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란 것을 그 때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궁여지책으로 작은 사무실을 얻어 혼자 놀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습니다. 정말 일을 다시 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계속 일을 할 생각입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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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무실을 얻었습니다.
책상도 놓고 소파도 놓고 Playstation과 switch 도 설치했습니다.
종일 게임도 하고 OTT 서비스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책을 읽을 때는 사무실 근처 야외 벤치에서 여유로운 시간도 보냈습니다.
중간 중간 수소문으로 병, 의원 개원 목적으로 찾아 주시던 분들이 계시긴 했습니다. 오시면 컨설팅 업체처럼, 같이 상권 분석도 하고 임장도 같이 다녔습니다. 당연히 무료였죠. 제 시간이 너무 남았던 시기였으니까요. 처음이라 절박한 분들을 도와 드리는 것이 기뻤습니다.
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아이들 등교 시간에 집 바로 앞에 있는 스포츠 센터에서 주말 빼고 매일 PT를 받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냥 호구였네요. 연장은 당연히 때에 맞춰서 잘해주고, 담당샘이 실적이 미흡하면 다음 기간 당겨서 결제해주고.
PT후에는 사무실로 출근을 해, 위와 같은 무료하지만 평화로운 생활을 6개월 정도 했던 것 같네요.
여름이 지나고 가을 정도 될 무렵, 집사람이 처가 어른들을 만나고 오면 이상한 이야기를 꺼내 놓기 시작했습니다.
어디 취직라도 하라고.
취직? 내가?
돈은 충분하다고~
돈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집 사람에게 저는 그냥 ‘백수’였습니다.
자기는 ‘백수’랑 결혼한 게 아닌데 우울증이 올 것 같다 하더군요.
집사람이 소통하는 커뮤니티가 주로 캐나다 가기 전 아이들 유치원 친구들 엄마였습니다. 그 모임이 4~5년 후까지도 지속되었던 것입니다.
그 모임에서 아빠들 비교가 시작된 것입니다.
…. 아빠 비교….
누구 아빠는 지금 모하시니? 자꾸 묻더랍니다.
그게 왜 궁금한지 이해는 하지만 그 궁금함이 저를 궁지로 모는 발단이 되더군요.
지금도 주말마다 집사람과 술 자리를 하는데, 당시는 주말마다 술을 마시면 ‘일을 하네 마네’ 하는 이야기로 서로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고 서로의 말만하다가 각자 집으로 돌아오게 되는 경우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또 추가된 깨달음은,
1. 은퇴는 혼자 결정하면 안 되겠구나.
2. 스스로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가족의 동의나 교육, 이해가 동반되지 않으면 은퇴는 불가능하겠구나.
였습니다.
정년 이전 은퇴는 (아직 한국 사회에서는)
가족, 특히 배우자의 이해가 필요한 문제였던 것입니다.
제가 완전히 재벌급의 은퇴가 아니었으니, 훨씬 위 레벨의 문제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은퇴를 번복 해야겠다 싶은 생각이 저 나름 대로도 생기고 있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계속 일을 할 생각입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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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없이 은퇴한 자의 일과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1. 7시반 PT를 받고 사무실로 가서 커피 한 잔하고 주변 산책하거나 핸드폰 조금 만지면 10시 정도
2. 콘솔 게임 뭐 좀 했다 하면 점심 시간 때를 놓치고 2~3시에 먹게 되더군요.
3. 늦은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서 책을 읽거나 심지어 그림도 그렸습니다. 그림 외에 블록 체인으로 수익이 될 것이 뭐가 있는지도 알아봤습니다.
곁다리 - 당시에는 NFT 열풍이 불었던 시기라 이더리움 기반으로 OPENSEA에 NFT를 만들어 올리기도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따라 정상 그림의 해상도를 엄청 낮춰서 도트 형식으로 만들어 보기도 하고, 제 그림(? 그냥 물감 범벅)을 사진으로 찍어서 만들어보기 하고….
4. 저녁 식사 시간도 애매했습니다. 하루 종일 놀고 온 것이 뻔한데 저녁 상을 바라는 것은 포기했습니다. 사무실에 비치한 전자레인지를 이용해 PT 트레이너가 추천한 냉동 고등어나 햇반 정도, 때로는 컵라면 추가. 이런 것들로 배를 채웠습니다.
5. 귀가는 8시 전후가 되었습니다. 참고로 요즘도 이르긴 하지만 당시 저희 아이들의 취침 시간은 8시였습니다.
6. 1층에 있는 욕실과 제 방을 조용히 이용 후 밤을 맞았습니다. (집사람은 2층에서 아이들을 재우는 형태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런 생활이 대부분인 경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1. 사람과의 대화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2.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감각이 둔해졌다.
3. 지금 당장 내가 죽어 지구에 없어도 사무실 밖 세상은 아무런 변화가 없다. 이익도 손해도. 어떤 사람에게도
우선 3도 중요하지만 1과 2로 인해 내 뇌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음은 뇌과학 이야기로 시작되겠네요.)
저는 앞으로도 계속 일을 할 생각입니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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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채님이 facebook을 통해 추천한 책 리스트 중 ‘이토록 뜻밖의 뇌 과학’이란 책이 있었습니다.
뇌는 생각하는 기관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에너지를 배분하고 조정하는 기관’이라는 흥미로운 정의가 돋보였습니다.
뇌는 기획을 하는 곳이 아니라, 에너지 효율을 정해 ‘신체 예산’을 관리하는 곳이라는 이야깁니다.
뇌에 미치는 ‘언어의 힘’도 있습니다.
말 자체가 우리 신경계에 영향을 미친답니다.
좋은 말을 옆에서 듣게 되면 예산은 쌓이고, 전해지는 언어가 없거나 험하면 예산은 빠지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PT 시간 빼고 거의 종일 혼자였던 저는 ‘신체 예산’이 몇 개월째 새어 나가기만 했던거죠. 제 뇌는 ‘신체 예산’이 바닥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때보다 근육량은 많았으나 건강하다고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 밖에
‘알로스타시스 (allostatsis)’ – 몸에서 뭔가 필요할 때 미리 충족시킬 수 있도록 자동으로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입니다.
작은 벌레에서 진화해 아주 복잡한 신체를 운영하게 되는데 ‘뇌’의 이 allostasis가 큰 역할을 했다 추정합니다.
Social input이 뇌를 자극, 다른 뇌 세포끼리 시넵스를 이루고 튜닝을 하거나 가지치리를 해야합니다. 그렇게 어린 뇌는 성장하게 되는거죠.
전 input이 없으니 뇌의 퇴화를 보였던 것 같습니다.
멍해져 가는 제가 왜 그랬는지 다행히 책 한 권을 운명적으로 만나 깨닫게 되었습니다.
불안했죠.
이대로 작은 벌레가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세 번째, 세상이 당장 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오히려 별로 신경쓰이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네요. 더 이상 뭘 이루고 싶은 생각도 처음으로 없어졌던 시기였습니다.
대신 그렇게 살면, 오늘 죽으나 내일 죽으나 무슨 의미인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황당하게, 게임을 하고 책 보고 놀다가 죽었다고?
이런 삶을 위해서 지금까지 살았다고?
지금 은퇴를 말할 때가 아니라 죽을 때를 생각 해야겠는걸?
‘죽을 때 어떻게 죽어야 후회가 없을지.’
최근 버크셔 해서웨이 주총에서,
한 소녀가 버핏에게 질문했다죠.
“만일 찰리와 하루를 더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요?”
- 지금까지의 평범한 하루.
저도 이 때 비슷한 생각으로 돌아섰습니다.
‘언제 죽어도 후회 없는 삶’
마침 Bunker라고 명명했던 사무실 밖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면서 거기에 이유를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집사람이 뭐라 해서도 아니고 온전히 스스로를 위해 bunker를 나가야 할 이유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계속 일을 할 생각입니다. (5,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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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매듭 글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사실 혼자 사무실에서 생활한다고 자유로운 것 만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 귀찮은 일은 더 늘었다고 생각하빈다.
이전에는 main job 이외, 사람들과의 접촉이나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장치들이 있었습니다.
'직원'을 통해 대행을 하거나 1, 2차 검토를 거친 후 최종 결제만 하는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예를 들어 세무사나 노무사 등을 접촉할 때는 직원을 통해 미리 자료를 받아 검토하고 최종 결정을 하거나 보고만 받았습니다.
의원을 1년 정도 운영한 이후부터는 조금 더 개인적인 일을 맡기고 싶었습니다. 사업장의 구석구석이 파악된 이후에는 경영에 대한 피로도를 낮추고 싶었습니다. 이때 멀쩡하게 다른 일을 하던 동생을 설득하게 되었습니다. 동생을 직원으로 두게 된 후 부터는 지극히 개인적인 정보까지 닿는 업무도 동생을 통해 대행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은 생각보다 참으로 피곤한 업무이며, 대단히 큰 에너지가 필요한 작업입니다. 그것이 긍정적인 일이라고 하더라도.
일단 이러한 방어벽, 방어막 역할을 하는 직원들이나 동생이 사라지니 감정적 피로도가 간헐적으로 높아질 때가 생겼습니다.
이외에도 추가적으로 하나 더 꼽아보자면, '건강보험료'가 있겠네요. 이 부분은 저도 마찬가지지만 회사를 다니다가 퇴사하시면 똑같이 체감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건강보험료가 직장가입자가 아닌 지역가입자로 변경되는 것입니다.
큰 액수는 아니지만 일단 퇴사를 하게 되면, 현금 흐름이 좋더라도 기존보다 더 증가하는 건보료에 기분이 상할 수 있습니다.😉😉 세제적으로도 일을 안하는데 돈은 더 지불하는 느낌도 받게 되고.
위의 사안이 모두는 아니지만 생활하면서 '내가 진정 자유의 몸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주 많이, 그리고 충분히 자유롭다고 말하기는 힘들었습니다.
배트맨과 버틀러 관계까지는 아니겠지만 그와 비슷한 챙김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왜 일을 그만두게 되었는지 근본적으로 다시 돌이켜 보았습니다.
우선 혼자 의원을 하면서 수술과 외래 진료 모두를 담당했고, 근무시간 전 후로는 경영(직원, 매출 관리 등)에 대한 부담과 스트레스가 있었습니다. 그 스트레스의 효과적인 해소 방법을 적절히 못 찾았던 같습니다. 마음 맞는 사람과의 대화가 매우 큰 해소 방법이 되었는데, 가끔 동기들을 만나는 것을 큰 낙으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동기들도 바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매일 만날 수도 없는 일이죠.
나머지 이유 하나는 가장 중요한 '가족'.
하지만 이제 가족은 같이 있게 되었죠. 나중에 미국으로 다시 나가더라도 짧으면 4년, 아니면 아이들만 기숙 학교로 보내는 방법이 당시 계획이었습니다.
아이들 곁에서 '등하원 도우미'가 되겠다던 제 짧은 생각은 집사람이 정중히 거절했고요.
집사람은 평범하고 일반적인 아빠역할을 원했습니다.
커뮤니티 모임에서의 '아빠들 비교'도 시간이 더할 수록 집사람한테는 스트레스였을테죠.
결국 저는
1. 멍해져 가는 제 자신이 탐탁치 않았으며,
2. 제 '주 업' 이외 다른 사항들은 (주로 직원들을 통해) 부탁해서 처리할 수 있고,
3. 현금 흐름도 좋아져 투자금의 축소 없이,
4. 혼자 대표 역할을 도맡는 스트레스를 피하면서,
5. 가족들이 안심할 수 있는 '아빠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그 길'을 찾아 나서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것이 찾겠다고 하면 찾아지고, 그런 길을 가겠다고 하면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행히 지금은 이런 조건들이 만족할 정도의 환경 속으로 들어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영원한 정답이라고 확언하기는 힘들겠지요. 제 변덕스러운 마음과 변할 수 있는 가족의 상황도 큰 변수가 될테니까요.
대부분의 은퇴는 자신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흐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업'이 달라져 제 2의 '업'을 은퇴라고 말하면 제가 말하는 은퇴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아직 축소되는 방향이 맞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예전보다 규모를 월등히 높인 상태이며, 나와 같은 고민을 나눠서 할 수 있는 좋은 동료들를 얻었습니다.
근무 시간 이외에 집에서도 병원 걱정을 하던 때와는 달리 지금은 병원에 남아 있어도 근무 시간 이후에는 생각을 완전히 분리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일에서 나 자신을 분리 할 수 있는 환경만 만들 수 있다면 물리적인 은퇴는 굳이 필요 없을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규칙적이고 균형적인 삶을 위해 저는 인생이 끝날 때까지 앞으로도 계속 일을 할 생각입니다.
https://x.com/kyungjei_woo/status/1792525524360925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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