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모건은 왜 銀 매집에 나섰나… 억눌려온 은값의 진실
입력2022.04.11. 오후 4:20
헤지펀드의 공매도 공격에 격분해 ‘게임스톱 사태’를 일으켰던 의리파 개미들이 있다. 이들은 인터넷 커뮤니티 레딧(Reddit)의 서브 채널인 ‘월스트리트베츠(Wallstreetbets)’에서 의견을 주고받으며 헤지펀드 공격에 나섰다. 그런데 이들 개인투자자들이 지난해 1월 말 난데없이 은 매입을 촉구하며 은 선물시장도 공격한 일이 있었다. 이들 개미들은 왜 은 매입을 촉구하며 은 선물시장을 공격하고 나선 것일까?
이들은 은 시장 역시 게임스톱과 마찬가지로 일부 세력들에 의해 부당한 매도 공격을 받으며 가격이 짓눌리고 있다고 본 것이다. 이들은 2020년 1월 27일 월스트리트베츠에서 미국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감추기 위해 정부와 금융권이 합세해 은 시세를 억누르고 있다면서 “인플레이션을 고려한 은 가격은 1000달러는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은 매입을 촉구하는 이들의 글이 올라오면서 은 가격이 출렁이기 시작했다. 이들의 목표는 그동안 은값을 의도적으로 억눌러 싸게 매입해왔던 JP모건을 혼쭐내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혼쭐만 제대로 내주면 은 가격은 1000달러까지도 올라간다고 봤다.
개미들, 銀 선물시장 공격에 나서다
개미들이 은 선물을 사들이자 은 선물 가격은 지난해 1월 28일과 29일 이틀 동안 10% 정도 상승했다. 주말에는 소매 사이트에 은 매입 주문이 쏟아졌다. 은 현물가격은 2월 1일 한때 6.4% 오른 온스당 28.72달러를 기록, 2020년 9월 초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은 생산 업체의 주식도 이날 장중 호주 증시에서 15%가 넘는 급등세를 보였다.
하지만 개미들의 반란은 의외로 쉽게 제압되었다. 개미들이 월가 큰손들에 의해 은 선물이 하락 베팅되고 있다며 쇼트스퀴즈(공매도 위축)를 시도하면서 은값을 끌어올리자 당국이 대응에 나선 것이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가 은 선물 증거금을 기존 1만4000달러에서 1만6500달러로 18% 인상했다. 그러자 은 선물가격이 폭락해 전일의 상승분을 모두 까먹었다. 3월 인도 은 선물은 전날 9.3% 뛰며 2013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올랐으나 증거금의 기습 인상 후 결국 10.3% 폭락해 온스당 26.402달러로 추락했다. 결국 1조5000억달러 규모에 달하는 은 시장은 온라인사이트에서 결집한 개미들이 표적으로 삼기에는 힘겨운 상대였다.
2020년 초 팬데믹이 시작되자 연준은 돈 풀기에 돌입했다. 3~4월 두 달 사이에 지난 6년간에 걸쳐 풀었던 돈보다 더 많은 돈을 풀었다. 결과적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의 본원통화 발행액인 8000억달러 내외에 비해 무려 10배의 달러가 시중에 풀린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달러의 대체자산인 금과 은의 가격 상승은 당연한 순서이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입장에서 금과 은의 가격 상승은 달러에 대한 불신을 의미하므로 이를 그냥 묵과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증거금 인상해 진입장벽 높인 은 시장
금과 은 가격이 꿈틀거리자 시카고상품거래소(CME)는 금·은 선물 증거금을 무려 8차례나 연속 인상했다. 아주 이례적인 경우이다. 원래 금과 은의 가격이 오르면 증거금을 인상할 수 있다. 한두 차례 정도 인상해서 가격 변동성과 현물인도 보장에 대처할 정도면 된다. 그런데 연속 8차례 인상은 정도가 심했다. 진입장벽을 높이고 거래와 유지비용을 많이 들게 해 매도물량을 쏟아내게 해서 가격 하락을 노린 것이다.
금·은 등 귀금속 선물시장 증거금은 두 종류가 있다. ‘위탁증거금’은 거래를 개시할 때 필요한 증거금으로 일명 개시증거금이라고도 불린다. 진입장벽을 높이는 데 쓰인다. ‘유지증거금’은 포지션 유지를 위해 최소한으로 유지해야 하는 증거금이다. 마감일에 현물로 인도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이를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금액이다. 선물시장에는 ‘마진콜’ 제도가 있다. 계좌의 평가금액이 유지증거금 이하로 내려갔을 때, 증권사에서 추가증거금을 요청하는 연락이 온다. 다음날 정오까지 납부하지 못 하면 거래가 강제 청산된다.
증거금 인상의 초점은 금보다는 ‘은’이다. 은 시장에 신규 유입되는 투자자들이 너무 폭증한다고 본 것이다. 게다가 금과 은은 동행성이 강해 어느 하나를 잡으면 다른 쪽에도 영향이 간다. 은 선물 증거금은 금 선물에 비해 인상률이 거의 5배 정도나 더 높았다. 특히 개시증거금을 많이 올려 진입장벽을 높인 게 특징이다. 여기에 증거금을 올릴 때마다 레버리지를 축소해 투자자들의 부담을 가중시켰다.
금값 잡기 위해 은값 희생
과거에도 이런 사례가 있었다. 2011년 금값이 치솟자 중국은 달러 표시 국채 대신 금을 외환보유고에 담겠다고 큰소리쳤다. 미국으로서는 공공연한 달러에 대한 도전을 그대로 묵과할 수 없었다. 그해 4월 말 CME는 은 선물 마진을 2주 만에 4~5회 급격히 올렸다. 거래비용이 84%나 상승하여 전례 없는 매도물량이 쏟아졌다. 급증하는 포지션 유지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11년 4월 28일 은 가격이 온스당 49.51달러라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직후의 일이었다. 당시 은 가격이 20%나 급락했다. 이렇게 은 선물시장 공격을 시작으로 8월에도 선물시장 증거금을 2차례 인상하고 단기금리 인상, 선물시장 대량 매도물량 투하, 투자은행들의 금 시세 조작행위 방치 등으로 금 가격을 2년 만에 온스당 1920달러에서 1100달러대로, 은 가격을 49달러에서 19달러대로 폭락시켰다. 그간 미국 국채의 큰손이었던 외국 중앙은행들은 2020년 들어서면서부터 더 이상 미국 국채를 사지 않고 있다. 수익률도 형편없고 앞으로 가격 하락 가능성이 높은 미국 국채에 대한 매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2020년 상반기 미국 국채 구입액이 고작 40억달러에 그쳤다. 미국 국채 발행액 3조4500억달러의 0.1%에 불과했다. 대신 각국 중앙은행들은 외환보유고에 금을 쓸어담고 있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으로서는 이런 현상이 2011년 사태가 떠오르는 굉장히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금값 안정을 위해 은 가격을 볼모로 잡고 있는 미국 정부의 이해관계를 충실히 따르고 있는 금융기관이 JP모건체이스은행이다. 이 은행이 은을 매집하면서 은 선물 가격을 조종해 은 현물 가격을 억누르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JP모건은 왜 은을 매집하고 있을까. 이유는 3가지로 추정된다. 우선 주가 폭락과 달러가치 하락에 대비한 리스크 헤지로 볼 수 있다. 둘째 금 매집은 미 정부와 연준에 맞서는 행위이기 때문에 금 대신 은을 매집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2011년 조지 소로스와 폴 존슨 등의 헤지펀드가 미 정부에 맞서 금을 매집하다 정부 규제에 호되게 당하며 몇십억 달러씩 손해를 보았다. 이를 본 JP모건은 그때부터 금이 아닌 은 매집으로 방향을 돌렸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달러와 금, 은 등 실물자산을 기초로 하는 스테이블코인 암호화폐를 만들기 위한 토대 구축으로도 보인다.
JP모건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미 연준의 긴급 요청과 300억달러 지원으로 이틀 전만 해도 주당 15달러였던 베어스턴스를 주당 2달러에 인수했다. 이 베어스턴스의 전문 분야 중 하나가 은 파생상품이었다. 당시 너무 파격적인 금액과 지원으로 JP모건이 베어스턴스를 인수해서 이와 관련 음모론적인 눈초리도 많았는데, 그때 상황은 리먼브라더스 파산 문제와 겹쳐 연준이 빨리 사태를 수습하는 게 급선무여서 그리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JP모건은 베어스턴스 인수를 통해 이때부터 은 거래와 매집에 본격적으로 착수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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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photo 뉴시스
JP모건의 은 선물 시세 조작 수법
JP모건의 은 매집 이유로 최근에 주목받는 것은 암호화폐와의 연관성이다. JP모건의 회장 제이미 다이먼은 암호화폐가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화폐로서의 가치가 없는 사기’라고 혹평했었다. 근데 어느 날부터 180도 변해 암호화폐 옹호론자가 되었다. 그리고 미국 대형은행으로서는 최초로 ‘JPM코인’이라는 암호화폐 발행을 추진하고 있다. JPM코인은 스테이블코인으로 일정 자산 가격, 곧 달러에 연동하여 암호화폐의 단점이던 변동성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코인이다. 이 JPM코인은 JP모건을 이용하는 기관 간 거래에 쓰일 예정이다. 은행 보유 법정화폐(달러) 총액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발행된다. 현재 JP모건의 기업 고객 간에 이루어지는 결제금액은 하루 6조달러다. 이에 JPM코인은 1차적으로 결제 송금 시 사용될 예정이다. JP모건은 2019년 6월 ‘JPM코인’을 개발하여 이미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JP모건의 은 매집과 관련해 또 하나 제기되는 의문은 어떻게 그렇게 싸게 은을 매집할 수 있느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가 회복되면서 은 가격은 2011년 온스당 50달러에 육박할 정도로 치솟았다. JP모건의 은 매집은 은값이 정점이었던 2011년 4월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는 1980년 석유재벌 헌터 형제나 1998년 버크셔해서웨이가 최대로 보유했던 은 보유량보다 훨씬 많은 양이다. 곧 JP모건의 은 매집 규모는 과거 2차례 대규모 매집 사례들보다 더 큰 규모의 매집이다.
이상한 것은 2011년부터 JP모건의 은 매입이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은 가격은 계속 곤두박질치고 있다는 점이다. 원래 수요가 많으면 가격은 오르는 게 정상이다. 근데 왜 가격이 폭락했을까?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당시 미국 정부와 연준이 달러에 도전하는 금 가격을 찍어 누르면서 선물 증거금 인상 등 여러 가지 규제를 가할 때 은 역시 규제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하나는 JP모건이 실물 은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선물 시세를 조작하여 은 가격을 지속적으로 낮추었기 때문이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는 그간 투자자들의 은 선물시장 조사 요구에 대해 JP모건의 은 선물 거래에는 위법한 사실이 없다고 거듭 발표했다. 가재는 게 편이었다. 그러나 미국 법무부는 달랐다. JP모건은 이 문제로 검찰 조사를 받고 2019년 9월 전·현직 임원 3명이 기소되었다. JP모건은 2016년까지 최소 8년 동안 귀금속·채권 시장에서 관련 범죄를 저질렀다는 혐의로 2020년 9억2000만달러의 벌금을 물었다. 하지만 이것도 범죄 규모에 비해 솜방망이 처벌이었다.
이들은 ‘스푸핑(spoofing)’으로 알려진 수단을 동원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스푸핑은 실제 거래를 체결할 의사 없이 초단타로 대규모 매수 또는 매도 주문을 내 호가 창에 반영되도록 한 뒤, 거래 성사 직전 취소하는 방식으로 가격을 끌어내리는 수법이다. 하지만 스푸핑이 다가 아니다. 검찰이 조사하지 못한 더 중요한 분야는 집중적인 선물 대량매도로 가격을 끌어내리는 조작이다. 조작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현재의 저평가된 은 가격 추세는 JP 모건의 지난 10년간 조작의 결과물이다. 2011년 온스당 50달러에 육박했던 은 가격이 그 뒤 유동성이 폭증했음에도 2022년 3월 말 기준 24달러 수준이다.
2011년 4월 제로였던 JP모건의 뉴욕상품거래소(COMEX) 창고 은보유량이 2021년 1월 기준, 1억9391만온스로 증가했다. JP모건의 은 매집량은 COMEX 창고 은 보유량의 절반이 넘는 물량이다. 이는 전부 선물시장에서 실물결제 요구를 통해 축적되었다. JP모건은 이 창고 외에 다른 곳에도 은을 보관하고 있다는 루머가 있다. 중요한 점은 이런 비정상적이고 부도덕한 방법으로 JP모건은 은을 헐값에 매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은 채굴 원가가 온스 당 14~17달러인데, JP모건의 평균 은 매집 단가는 15~18달러로 알려져 있다.
현대의 은 역사에서는 2차례 유명한 은 대규모 매집이 있었다. 첫 번째 사례는 1980년대 초 헌터 형제가 실물 은 1억온스를 매집했다가 결국 자금 부족으로 버티지 못하고 실패한 사건이다. 이때 헌트 형제는 10억달러 이상을 잃었다. 게다가 시세조종 혐의가 인정돼 1억달러가 넘는 벌금도 물어야 했다.
두 번째는 1997~1998년 사이에 워런 버핏의 버크셔해서웨이가 은 1억2970만온스를 매집한 사건이다. 그 뒤 2006년 두 번에 걸쳐 분할 매도하여 약 100%의 수익을 실현했다.
이후 워런 버핏은 다른 방법으로 은 매집을 시도했다. 곧 은 대신 JP모건 주식을 산 것이다. 2018~2019년 그는 JP모건 주식 5010만주, 약 49억달러어치를 매수했다.
생산량보다 산업용 소비가 더 큰 안전자산
은은 금과 마찬가지로 안전자산이다. 따라서 포트폴리오에 은을 편입함으로써 만약의 경우 주가 폭락이나 달러가치 하락 시 자산 방어에 유용하게 대처할 수 있다. 또 하나는 경기 회복 시 산업용 수요가 많은 은이 금보다 훨씬 강하게 상승한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은의 산업용 용도가 60%에 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은은 수요가 공급을 앞질러 날이 갈수록 은 재고가 줄어들고 있다. 은의 연간 생산량보다 산업용 소비가 더 크기 때문이다.
금·은 교환 비율은 고대에 1 대 12.5로부터 출발했다. 태양과 달의 관계였다. 태양이 1년에 한 번 자전할 때 달의 삭망 주기는 12번 반이었기 때문이다. 근대 들어서도 이러한 교환 비율은 계속되었다. 서양은 금과 은의 교환 비율이 대략 1 대 12였고, 이슬람은 1 대 9, 중국은 1 대 6이었다. 이런 관계로 은이 고평가되고 있는 중국과 교역했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서양의 은을 가져와 중국의 금과 바꾸는 환거래로 100%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이랬던 금과 은의 교환 비율이 금본위제도가 시작되면서 금으로 기울기 시작하더니 현대 들어서는 은 가격의 지나친 억압으로 더욱 급속히 하락해 2010년부터 2019년까지의 10년간 금·은 교환 비율은 평균 67.6배였다. 2022년 3월 말 현재 금·은 교환 비율이 77배임을 고려할 때 은 가격의 추가적 상승세가 기대된다.
한 가지 고려할 것은 미국 정부나 금융권이 금과 은값을 억누르기 힘든 시기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전쟁, 전염병, 혁명 등 불가항력적 시기와 글로벌 경제위기나 초인플레이션 상황이 바로 그런 시기이다.
홍익희 세종대 대우교수·‘월가이야기’ 저자
https://n.news.naver.com/article/053/0000031032?sid=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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