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 / 2026. 5. 23. 10:33

동아시아에서 출산율이 계속 떨어지는 뜻밖의 이유,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

<동아시아에서 출산율이 계속 떨어지는 뜻밖의 이유 ㄷㄷ>

1.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도쿄를 비롯한 일본의 여러 도시는 점점 더 안전해지고 청결해졌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그러한 사회에 어울리는 인간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2. 거리가 안전하고 청결해질수록 우리 자신 역시 이에 어울리는 흠결 없는 존재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죠. 이는 결코 반길 만한 상황이 아닐 겁니다.

3. 또한, 우리는 자본주의의 논리에도 속절없이 휘둘리고 있습니다. 현재 일본에서는 누구나 비용 대비 효과, 시간 대비 효과를 늘 의식하며 살고 있습니다.

4. 물론 “시간은 금”이라는 논리나 돈과 지위, 풍요로운 삶을 갈망하는 상승 지향적 가치관은 사회를 발전시키고, 개인의 가능성을 끌어올리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관이 사회와 개인의 삶 속에 지나치게 깊이 스며들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요?

5. 한국의 독자분들도 잘 알고 계시겠지만, 일본에서는 특히 도시로 진출하려는 능력 있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2024년 도쿄의 합계특수출생률은 0.96입니다.

6.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을 꿈꾸는) 상승 지향적 가치관은 바람직한 사고방식으로 여겨지지만, 그 결과 개인은 집세가 비싸고 경쟁은 치열한, 휘황찬란한 도쿄라는 블랙홀 속에 삼켜지고 있습니다.

7. 아마도 서울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지리라 생각합니다. 한국에는 ‘N포 세대’라는 말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8. 물론 어딘가에는 상승 지향적 가치관을 실현해내는 이들이 있겠죠.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경쟁 구조 속에서 그런 사람들은 소수일 수밖에 없습니다.

9.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오르지 못하고 좌절한 수많은 젊은이들은 비용과 위험에 대한 의식에 사로잡혀 출산 적령기를 그대로 지나쳐버리고 있습니다. 본래 생물로서 살아온 우리 인간에게 이는 분명한 상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0. 도쿄, 서울, 방콕, 타이페이 등 합계특수출생률이 현저히 낮은 대도시들은 공통적으로 안전하고 청결하며 급속한 근대화와 경제 발전을 이룬 동시에, 세계화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11.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의 격차가 크고, 새롭게 형성된 사회 규범과 여전히 구태의연한 요소들이 공존하다고 있다는 점 역시 비슷하지요.

12. (한편) 연배가 지긋한 분들의 회고에 따르면, 1960~70년대는 그야말로 희망이 넘치는 시대였다고 합니다. 이 시기 일본은 고도 성장기였고, 당시 사람들이 희망을 품고 열심히 일해준 덕분에 일본은 그 시기 선진국으로서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습니다.

13.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시기 일본이 낙원이었던 건 아닙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거리는 더럽고 소란스러웠으며, 위법 행위도 난무했죠.

14. 그때에 비하면 지금의 일본 사회는 매우 진일보했습니다. 거리는 깨끗해졌고, 악취나 오물,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와 맞닥뜨릴 일도 거의 없죠. 무례한 사람이나 법을 어기는 사람도 현저히 줄었습니다.

15. 그렇다면 이토록 발전한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전 시대의 사람들보다 훨씬 행복해졌을까요? 자부심과 희망을 품고 미래를 내다보고 있을까요?

16. (안타깝게도) 건강하게 오래 사는 사회가 실현되었지만, 출생률은 계속 떨어지고 있고, 아이들이 뛰어놀 공간은 좁아졌으며, 공원에서 마음 놓고 공놀이조차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17. 부모의 책임과 부담은 이전 시대에 비해 더할 나위 없이 무거워졌고, (마을이라는 공동체는 해체됐죠)

18. 전에 없을 만큼 건강하고 청결하며 질서 정연한 사회가 확립되었건만, 그것들이 오히려 우리의 발목을 붙잡고 있습니다.

19. 1990년대 이전 사람들은 신경조차 쓰지 않던 일들에 우리는 예민하게 반응하고, 그로 인한 수치심과 죄책감, 열등감마저 느끼고 있습니다.

20. 건강하고 청결하며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거리 속에서 어쩌면 우리는 예전보다 훨씬 더 예민해지고, 불안해지고, 각박해지고 있는 건 아닐까요?

- 구로시로 도루, 책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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