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 / 2025. 5. 6. 23:08

거악 이재명을 만들어낸 사법 카르텔

우익진영의 신화 중 하나는 법치주의였다. 모두들 법치주의가 조금의 오류도 없는 절대선인 것처럼 떠벌리고 다녔다. 법치주의를 찬양하는 우파 인사들, 자칭 자유청년 우파들의 칼럼을 한 달에 한 번은 읽을 수 있었다. 나도 한 때는 그것이 옳은 줄 알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 법치라는 말이(정확히는 법치를 찬양하는 너절한 언사가) 참 싫어지게 되었다.

법치의 환상에서 벗어나게 된 첫 번째 순간은, 서른이 되고 변호사 지인과 꽤 가까워지게 되면서였다. 그는 6년차 변호사였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당시에는 변호사 업에 대해서 깊은 회의감을 갖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내게 '실체적 진실'이라는 것이 얼마나 '불안정한' 것인지, '전관예우'라는 단어가 왜 존재하는 것인지를 경험과 사례를 기반으로 툭툭 펀치를 던지듯 말하곤 했다.

그 이후에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이를 먹어가면서... 세상에는 참 다양한 카르텔이 있고, 그 카르텔이라는 게 결국 면허나 네트워크로 보호받는다는 '실체적 진실'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나는 꽤 오랜 기간동안 일만 잘하면(실력ㅋㅋ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보다는 특정 산업을 장악하고 있는 곳의 구성원이 되어 거기서 좋은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것이 훨씬 중요했다.

그런 관점에서 법치라는 것은, 꽤나 강력한 카르텔 위에서 작동한다고 밖에 볼 수 없는 환경에 놓여있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좌파에서 말하는 '사법 카르텔' 같은 이야기는 부정했다. 나도 법관 친구들 있고, 변호사 친구들 있는데... 적어도 그 친구들은 그런 말을 부정했으니까. 법에는 '공정'이 정말 중요하다고 했으니까. 나는 그 친구들을 믿었다. 나름 오래 지켜본 결과 그들은 믿을만한(성실하고 똑똑하고 양심적인) 친구들이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그 친구들은 그렇게 살 것이라 믿는다.)

아 그런데, 이게 계엄으로 인해 크게 흔들리게 되었다.

이제서야 밝히는 것이지만, 나는 12.3 계엄 당일 국회의사당에 있었다. 마침 그 근처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고, 국회 방문 경험이 꽤 있었기에 국회가 익숙하여 역사의 현장에 들어가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경찰들은 입구를 막고 진입하려는 시민이나 관계자들을, 심지어는 국회의원들까지도 꽤 오랜시간 길을 내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담을 넘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 시간대(12월 3일에서 4일로 넘어가는 자정 즈음부터 새벽까지)에 국회 경내 안에는 '풀무장'한 군인 백명 정도가 걸어다녔다. 탄창을 여러 개 들고 이동중인 분대들을 여럿 보았고, 심지어는 헬기까지 육안으로 보았다. 이는 평소 청와대와 동일하게 '가'급 보안으로 보호받는 평화로운 국회 경내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모습으로, 실로 충격적이었다.

특수부대원들이 깬 유리창을 똑같이 타고 들어가 로텐더홀까지 가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는 것을 유튜브로 보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가면서 든 생각은, 혹시라도 무력충돌이 일어나 발포가 됐다면, 어쩌면 나 역시도 그 혼란의 틈바구니 사이에서 죽었을 수도 있겠다는 것이었다.

그 날의 현장은 비폭력으로 끝나긴 했으나, 충분히 유혈사태가 날 수도 있는 환경이었다. 그냥 현장의 군인들이 같은 한국사람, 특히 국회에 있는 사람들을 무력으로 진압하라는 정말 뜬금없는 명령에 따르지 못한 것 덕분에 해프닝으로 끝났던 것이지, 조금만 더 치밀했다면, 조금만 더 명분이 있었다면, 소총을 든 군인들 중 단 한 사람이라도 광기에 차 있었다면, 진짜 누군가는 발포를 했을 것이고 그 때부터는 100% 지옥이 펼쳐졌을 것이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이 사건이 대한민국의 법치주의와 크게 연관되는 일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왜냐면 윤석열 개인과 그 주변 문고리의 일탈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탄핵심판이 나기까지의 수많은 정치적 해프닝들을 보면서, 아 이게 윤석열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하나의 강력한 카르텔과 관련된 문제인가?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특히 지귀연 판사의 분단위 조기석방은 현직 대통령에 대한 의전이 아니라, 법조 카르텔의 정점에 있었던 윤석열에 대한 감싸주기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탄핵심판이 난 이후에는 이 의심은 거의 확신에 가까워지게 되었다. 대법원의 파기환송을 보면서, 국민의힘 지도부가 한덕수와 연합해 한동훈을 찍어내고 이제는 정당한 절차로 대선후보가 된 김문수까지 압박하는 것을 보면서... 그놈의 법치주의, 그러니까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라는 말이 얼마나 허망한지, 계엄으로 인한 탄핵국면이라는 이 시점에 얼마나 구차한 변명이 되어버렸는지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특히 보수우파 진영의 정치적 작동 논리를 그래도 일반인보다 훨씬 잘 이해하고 있는 나로서는... 실망감이 아니라 절망감이 드는 정도의 정치 국면인 것이다. (박근혜 탄핵 국면 때는 실망감이었다.)

기존에는 법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무엇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이고, 생각보다 쉽게 변할 수도 있고, 과학적 진실이 아니라 실체적 진실에 의존한다, 이러한 이유로 현실에서는 기득권에게 훨씬 유리하게 적용된다.("법은 무지한 자를 돕지 않는다.") 정도의 실망감이었다면, 이제는 법이라는 것이 특정 카르텔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것이었고, 그게 결국 계엄이라는... 최소 수 백명의 사람을 대상으로 한 살인미수 행위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한 이들을 지키기 위해 작동하고 있다는 절망감으로 변한 것이다.

나는 12월 3일의 현장에 없었던 사람들이 여전히 윤 어게인을 외치고, 계엄은 정당한 통치행위라는 식의 발언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심정적으로는 이해하고 있다. TV와 유튜브로만 그 날의 현장을 접했다면 그 장면들이 그렇게까지 위험한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인간은 원래 미디어로 접하는 사실에 대해서는 지극히 무감각해진다. 참전군인들은 PTSD에 시달리지만, 우리는 TV에 나오는 전쟁장면을 아무리 보아도 금방 두 발 뻗고 편하게 잠들기 때문이다.

수 백명이 사망했을 수도 있는 계엄선포보다는 야당의 탄핵남발이 더 중대한 이슈고, 야당 대선후보의 전과기록이 더 문제라고 느낄 수 있다. 다만 그것은 대부분 그 날의 현장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나는 그 사람들이 그 날의 현장에 있었다면, 정치적 스탠스가 크게 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긴 하겠으나... 그들도 최소한 '계몽' 같은 소리는 하지 않을 거라고 본다. 우리는 눈 앞에서 칼을 휘둘렀으면서 '생각을 바꾸기 위함이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계몽가라고 부르지 않는다. 법에 의해 살인미수범이라고 부른다.

권력을 비롯한 개인의 사정에 의해 윤석열에게 여전히 충성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당이 쪼개진 이유도, 그 날의 현장을 통해 계엄이 얼마나 '위험한' 짓이었는지를... 피부로 느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건 미친 짓이나 바보같은 짓이 아니라, 지극히 위험한 짓이었다.

이 위험한 짓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은 결국 역사의 간지대로 사라질 것이라고 보지만, 문제는 그것을 피부로 느끼지 못했기에 여전히 이 위험한 짓의 중대성을 체감하지 못하는 이들을 어떻게 설득해나갈 것이냐... 하는 문제이다. 아마 10% 정도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설득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는 사람이 실제로 죽어나간 광주 사건이 여전히 그러하듯 말이다.

적게는 수백명이 총탄에 사망할 수도 있었던, 많게는 수천명이 고문과 옥살이를 당할 수도 있는 행위를 지시한 사람... 그리고 그 사람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서 이해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 그리고 순진하게 그들을 옹호하는 사람들... 여기 어디에 '실체적 진실'과 '법 앞에서의 평등'이 있는가?

이들에게는 이재명의 전과에 대해 운운할 자격이 없다. 이들이야말로 어느 순간부터 '거악' 이재명을 만들어낸 사람들인 것이다. 플라톤의 동굴 알레고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내 말을 이해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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