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 / 2023. 7. 10. 08:29

본질은 존재가 아니라 관계이다

반응형

https://youtu.be/fq32ZV4nCAg

정리하면 이런 거죠

'인간관계에서 마찰이 생기는 이유는 대화를 제대로 하지 못해이다'라는 거고.. 제대로 된 대화를 진행하려면 대화의 주제를 벗어나면 안된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근데 인간의 뇌가 대화 중에 생기는 쾌감 때문에.. 특히 주도권을 빼앗았을 때 생기는 쾌감이 큰 탓에 자기도 모르게 대화의 주도권을 빼앗는 실수를 벌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행선을 이루는 대화가 나오며 인간관계가 깊어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중독성을 컨트롤할 수 있는 건 이성적 사고 밖에는 없는 상황이며 그럴려면 자신이 하려던 대화의 핵심이 뭐였는지를 계속해서 인지시켜야 합니다.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박사님은 집합론적 사고방식을 기초로 한 이성적 사고방식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말씀하시는 중입니다(아마 이게 가장 본질적이고 근원적이며 원조격이라는 의미이기도) 그래서 필요한 것은 대화를 진행시키기 전에 이 대화가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먼저 해놓고 대화의 주제나 화제가 함부로 바뀌지 않는 등대가 돼야 한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또 관계에 있어서의 대화는 결국 2가지로 나뉘는데 물질적 부족, 정신적 부족이란 정보로 대화주제의 목적을 상당부분 한정시킬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즉 이 두 가지를 기점으로 생각하면 관계와 대화에 있어서 목표설정이 더 쉬워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훈련을 할 때, 즉 대화를 앞두고 있을 때 이 두 개의 정보를 떠올리고 목표를 설정해둔 뒤 대화를 진행시켜가면서 끊임없이 잊지 않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아마도 그건 주도권을 잡으려는 쾌락과의 싸움이 될 것이며 싸움에서 승리했을 경우에서야 관계를 얻어낼 수 있다는 의미일테니까요. 대화가 끝난 뒤 자신이 얻은 게 쾌락인지 관계인지 아님 쾌락을 근거로 관계를 얻었다고 착각하는지 등등을 점검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쯤되면 이런 질문이 나올법합니다. '그렇게 힘들게 관계유지를 해야하냐? 걍 나 혼자 살란다. 나만 잘 살면 그만인 거 아니냐?'라고 말이죠. 즉 관계보다 존재를 우선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존재하고 그래야 관계가 만들어진다는 생각인 것이죠. 하지만 박사님은 이것의 선후가 뒤집어졌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렇담 그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할 타이밍이겠죠. 여기서 이과적 설명이 등장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부분보다 이 얘길 먼저 덧붙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지구가 있어야 생명체가 있는가? 생명체가 있어야 지구가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당연히 전자를 말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초원이 있어야 초식동물이 있는가? 초식동물이 있어야 초원이 있는가? 라고 물어도 쉽게 답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배경이자 바탕이 되는 게 존재해야 개별적 요소들이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뛰어난 히키코모리 오타쿠라고 해도 관계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다만 자신이 지닌 배경을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죠. 집앞에 배달해주는 쿠팡 기사와의 관계도 소비자와 배송자의 관계로 존재하며 내가 숨쉬는 공기조차 나무가 내뿜는 산소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걍 혼자 살란다'라고 자신의 존재만을 생각해보려 애쓰지만 사실은 그건 몇몇 관계를 포기한 것일 뿐 관계의 영역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어떤 사람은 숨쉬는 것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했고 어떤 이는 쿠팡 배송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 역시도 이런 난관을 겪었지만 비교적 쉽게 이겨냈을 뿐 그때의 어려움을 잊어버린 것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더 넓은 인간관계를 만들어가는 것 역시 현재의 어려움이지 불가능한 영역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관계를 맺는 어려움을 극복해왔으며 앞으로의 어려움 역시 이겨낼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 짜여져 있으니까요. 그러니 '걍 혼자 살란다' 라고 말하는 것에 대한 반론은 어느정도 이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부분을 이과감성으로 설명하셨던 것 뿐입니다. 그리고 그 핵심 명제는 '시간과 공간이 존재해야 속도가 존재하는 것인가? 아님 속도가 존재해야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는 것인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시간과 공간이 먼저 존재한다면 무엇이 우주의 공간을 넓혀가며 무엇이 시간의 움직임을 만드는가?라는 질문을 갖게 됩니다. 이 부분에 대답하지 못하는 상황.. 그래서 과학자들은 다른 질문을 선택합니다. 속도가 먼저라면.. 그리고 빛의 속도가 30만km라는 전제로 생각해본다면.. 그리고 그 속도가 시간/공간의 관계라고도 볼 수 있다면.. 왜 시간이 움직이고 공간이 넓혀져가는지를 설명할 수 있게 됩니다. 즉 시간과 공간의 개별체(혹은 생명체)를 전제로 했을 때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이 관계를 전제로 설명하니 많은 것들을 설명해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먼저다. 그리고 내가 중요하다'라고 말할 수록 주변의 수많은 관계들에 대해 설명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내가 중요하니까 나무를 다 베어버린다. 내가 더 중요하니까 쿠팡 노동자가 과로사 하던 상관없다. 라는 식으로 자기자신을 중요시하는 건 수많은 관계에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 채 종국적으로는 자기자신까지도 파괴시켜버리는 파국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래서 반대로 '관계가 먼저고 관계가 더 중요하다'라는 것을 먼저 받아들인다면 인간과 자연의 관계도 긍정적으로 볼 수 있고 쿠팡 노동자와 주변의 타인까지도 의미있는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선생님은 이 말씀을 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이네요.

약간의 패턴이 보일 것입니다. 집합론적 사고부터 시작해서 여태 언급된 것들 모든 것이 전제를 기점으로 생각해야만 의미를 갖는다는 점입니다. 혹자는 그 전제가 왜 그 전제를 가져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내밀기도 하는데 이것은 잘못됐습니다. 수학의 1이 왜 1인가?라고 묻는 것처럼 말이죠. 수학에서 1을 1이라고 하자.. 라고 말한 뒤부터의 수학의 의미가 크지 왜 수학은 1을 1이라고 하는 건가?라고 묻는 것에서의 수학적 성과는 없으니까요. 마찬가지로 집합론적 사고는 이런 전제를 설정해둘줄 아는 사고방식을 뜻하며 관계 역시 이런 설정을 해둘줄 아는 것을 뜻합니다. 한마디로 '미리 정해놓고 생각해라'라는 의미입니다. '생각하다가 뭔가 정해지겠지'가 아니고 말이죠. 루피가 해적왕이 된다고 정해놓고 항해하는 거지 살아가다보니 해적왕이 되겠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듯 말이죠. 본인의 꿈이 뭔지를 못정하겠다가 아니라 일단 꿈을 정해놓고 달려가는 게 본질이라는 의미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반응형
  • 네이버 블로그 공유
  • 네이버 밴드 공유
  • 페이스북 공유
  • 카카오스토리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