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 / 2025. 11. 19. 03:53

일본 좀비기업이 만든 저성장, 저임금, 저물가 그리고 폭등하는 쌀값

[일본 쌀값 폭등의 악질성에 대해]

2025년 11월 현재 일본 슈퍼마켓 쌀값은 5kg 한 포대에 평균 4,400엔대 중반, 공식 통계로는 4,444엔까지 올라와 있다.

불과 폭등 직전인 2023년 중반만 해도 5kg 가격은 2,283엔 안팎, 2022년 평균은 2,000엔에도 못 미쳤다. 대략 2년 남짓한 시간에 5kg 기준 두 배 넘게 뛴 것이다.

같은 시기 한국의 소매 쌀값은 5kg에 약 1만5천 원 내외(20kg 기준 6만1천 원 정도) 수준으로, 최근 몇 년간 완만한 등락은 있었지만 일본처럼 폭발적인 변동은 없었다.

올해 6월, 고이즈미 농림수산상 시절 정부 비축미를 5kg 2,000엔 수준에 직접 유통시키면서 한때 평균 소매가격이 3,920엔까지 내려간 적이 있다.

그러나 그 찰나의 하락은 곧 끝났다. 비축미 방출과 선거용 “쌀값 진정” 이벤트가 지나가자, 가격은 다시 4,000엔을 훌쩍 넘었고, 가을 들어서는 4,300엔대, 4,400엔대까지 치솟아 이제는 사실상 고착 단계에 들어섰다.

쌀값이 잠깐 꺾였다가 다시 솟구친 이 짧은 에피소드 속에, 일본 정치와 관료가 쌀값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가 고스란히 드러난다고 나는 본다.

이제 서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 오늘의 이 기묘한 쌀값 폭등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건이 아니다.

1980년대 말, 일본은 부동산과 주식 거품이 한계까지 부풀어 오른 나라였다. 땅값과 주가는 실물과 동떨어져 광기를 향해 달려갔고, 결국 거품은 터졌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거품 붕괴 이후 일본 정부와 은행이 택한 길은, “쓰러질 놈은 쓰러지게 두자”가 아니라 “어떻게든 버티게 만들자”였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이른바 ‘좀비기업’이다. 이미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들, 시장 논리대로라면 정리·퇴출되어야 할 기업들에게 은행은 대출을 끊지 않고 연장해 주었다.

상환 기한을 뒤로 미루고, 새 대출로 옛 빚을 막게 하면서, 겉모습만 살아 있는 회사들을 떠받쳤다. 경제학 교과서의 눈으로 보면 명백한 자원 배분 왜곡이다. 그러나 일본 내부의 논리를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전후 일본의 기업은 종신고용과 연공서열 임금 체계를 바탕으로 회사와 노동자 사이에 특유의 암묵적 계약을 쌓아 왔다.

정규직으로 들어가면 웬만하면 정년까지 데리고 간다. 임금은 성과보다는 연차와 연령에 맞춰 올라간다. 회사는 단지 돈 버는 터전이 아니라, 복지, 인간관계, 지역사회와 얽힌 하나의 생활 세계였다.

이런 구조에서 기업이 연쇄적으로 도산하면, 그것은 단지 법인의 사라짐이 아니라 지역 전체의 붕괴를 의미한다. 실업, 가계 파탄, 가정 붕괴, 자살이 줄줄이 뒤따른다.

그래서 일본은 경제 효율성보다 “한 번에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지 않겠다”는 선택을 했다. 은행은 부실을 감추고, 정부는 감독을 느슨하게 가져가며, 기업은 정리해고 대신 임금을 눌렀다.

그 결과 일본 사회는 “고용은 유지되지만 임금은 오르지 않는” 상태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한꺼번에 대량 실업을 터뜨리지 않으려는 방어적 선택이었고,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적인 고민이 깔린 결정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경제 구조로 보면, 여기서 이미 치명적인 균열이 시작되었다.

퇴출되어야 할 기업들이 좀비처럼 버티면서 산업 구조조정은 지연되거나 막혔다. 생산성이 낮은 기업들이 시장 안에서 덤핑 수준의 가격으로 물건을 내놓으니, 생산성이 높은 기업조차 마진을 확보하기 어렵게 된다.

은행의 자금과 사회의 인력은 낡은 기업과 낡은 설비에 묶이고, 새로운 시도와 혁신은 항상 “위험하다”는 이유로 뒤로 밀린다. 이렇게 해서 일본은 저성장, 저임금, 저물가라는 늪 속으로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침몰해 갔다.

이 상태가 5년, 10년이 아니라 거의 30년에 가깝게 이어졌다. 임금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물가는 꿈쩍도 하지 않으며, 기업과 가계는 현금을 쌓기만 했다.

유동성은 넘쳐나는데 실물 투자로 가지 않고, 도쿄 핵심 지역의 부동산 가격과 일부 주식만 이상하게 버블처럼 들썩거린다. 실물 경제는 식어 있는데, 자산 시장을 떠받치는 현금의 바다만 출렁인다.

여기에 초엔저가 겹치면서 일본인의 노동 가치는 국제적으로 말도 안 되게 싸졌고, 일본은 “싸고 편한 관광국”이라는 기묘한 위치로 미끄러졌다.

나는 세계 경제사를 통틀어 이런 조합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저성장, 저임금, 저물가, 고유동성, 초엔저, 자산 편중. 그 안에 좀비기업, 고령화, 소비 위축이 뒤엉켜 있다.

어느 나라든 위기를 맞으면 대개 10년 안에는 전쟁, 대규모 재정지출, 정책 전환 등으로 체제를 갈아엎고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일본은 그 방향 전환을 30년 동안 끝내 미루었다. 그리고 그 미루기의 끝에서, 마침내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집어 들고 있는 것이다.

에너지 가격 상승, 수입 물가 상승, 엔저에 떠밀려 물가가 꿈틀대기 시작하자, 일본의 권력층은 여기서 “기회”를 보았다.

오랫동안 꿈에 그리던 2~3% 물가 상승을 이참에 고착시키자는 계산이다. 문제는 물가를 어디서부터 올릴 것인가이다. 임금을 올려 내수를 살리는 길도 있을 것이다.

높은 소득과 자산을 가진 계층에게 더 많은 부담을 지우는 방식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이 실제로 보여준 것은,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의 생활비, 그 중에서도 쌀값을 쥐고 놓지 않겠다는 태도다.

표면적으로는 온갖 설명이 동원된다. 이상 기온과 폭염으로 인한 수확 감소, 품질 불량, 소비 패턴 변화, 관광객 급증, 유통 구조의 문제, 농가 보호, “일본 쌀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는 식의 수사까지. 그리고 비축미 방출 얘기도 한다.

그러나 정부 비축미가 농협과 대형 유통망을 통해 사실상 독점적으로 움직이면서, 진정한 의미의 가격 안정 수단으로 충분히 쓰이지 않았다는 점을 보면, 쌀값 안정을 진심으로 목표로 했다고 보기 어렵다.

쌀값을 잡겠다면 비축미 출하 방식, 수입 쌀 확대, 유통 구조 개입 등 다양한 옵션이 공개적으로 논의되고 실행됐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쌀값이 잠깐 내려갔다가 다시 치솟는 그림만 반복되었다.

나는 이 지점에서, 디플레이션 탈출이라는 엘리트들의 목표와 쌀값 폭등이 맞물려 있다고 본다.

물가가 쉽게 내려가지 않는 경제를 만들고 싶어 하는 세력이, 쌀이라는 주식을 통해 인플레이션 기대를 고정시키려는 유혹에 빠진 것이다. 30년 동안 아무리 돈을 풀어도 오르지 않던 물가가, 에너지와 수입 물가의 외부 충격으로 마침내 움직이자, 이들은 “다시는 디플레이션으로 돌아가면 안 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그 강박의 결과가, 쌀값 방치와 쌀값 폭등 유지 정책으로 나타났다고 나는 해석한다.

문제는, 이 선택이 경제학적 논리 이전에 인본적으로 최악이라는 점이다. 쌀값은 단순한 수많은 품목 중 하나가 아니다.

일본처럼 쌀이 여전히 주식의 상징으로 남아 있는 사회에서는, 쌀값은 생활비 구조의 맨 아랫단을 이룬다. 임금이 충분히 오르지도 않은 상태에서 쌀값을 두 배로 끌어올리고, 그 상태를 유지하려 든다는 것은, 사회의 가장 약한 계층, 저임금 노동자, 비정규직, 노년층, 한계 가구에게 직접적인 생존 부담을 지우는 일이다.

거품 붕괴 이후 일본이 걸어온 길은 복잡하다. 좀비기업을 떠받치는 정책은, 한꺼번에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지 않으려는 나름의 인본주의적 고민에서 출발했다고 나는 본다.

그러나 그 경제적 비용과 구조적 왜곡이 30년 동안 누적된 끝에, 지금 우리는 유례없는 기형 경제 위에 “쌀값 폭등”이라는 마지막 악수를 올려놓은 장면을 보고 있다.

나는 일본의 쌀값 폭등을 단순한 농산물 가격 문제로 보지 않는다. 30년 동안 미루고 미뤄온 구조개혁과 고통 분담, 사회적 재설계를 회피한 끝에, 결국 “먹고 사는 문제”의 핵심, 밥그릇을 디플레이션 탈출의 재료로 집어 넣은 사건이라고 본다.

디플레이션이라는 이름의 오래된 병을 고치겠다고, 가장 약한 사람들의 쌀값을 인위적으로 높은 수준에서 붙들어 두는 것. 이것은 인본주의 경제학 관점에서 보았을 때, 최악의 정책 결정이다.

일본의 쌀값 폭등은, 시장의 우연한 일탈이 아니라, 늦어도 한참 늦은 구조 개혁의 대가를 국민의 밥상 위에 얹어놓은, 매우 악질적인 사건이다.

이 악질성을 정확히 바라보는 것, 거기서부터 논의는 시작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글은 GPT5 플러스 버전과 공동 분석 작업한 결과물이다. 서로 합의점에 도달해서 썼다. 처음에는 서로 다른 분석지점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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